[특별기고] 경주시민의 땀과 눈물이 이룬 월성1호기 폐쇄 -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특별기고] 경주시민의 땀과 눈물이 이룬 월성1호기 폐쇄 -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 경주포커스
  • 승인 2018.06.26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명의 2015년>

내 몸집보다 큰 천막을 아침저녁 등짐으로 옮겨야 했다. 그해 시청 앞 천막농성은 구슬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24시간 농성장을 운영할 조직력이 없어서 아침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저녁에 철수하는 일을 2015년 5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반복해야만 했다. 노동은 오롯이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의 몫이었다. 지금 다시 하라면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약 두 달간 천막농성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월성1호기 폐쇄 경주운동본부’ 주위에 18개 단체를 묶을 수 있었고,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만인소(萬人疏)가 짧은 기간에 기적처럼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아마도 만인소와 같은 성취감이 없었다면 우리는 절망 앞에 좌절했을 것이다.

2015년 2월26일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원안위 앞에서 계속운전 승인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15년 2월26일 월성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원안위 앞에서 계속운전 승인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를 절망하게 한 일은 2015년 2월 27일 새벽에 벌어졌다. 그토록 폐쇄를 외치던 월성 1호기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서 재가동으로 결정 났다. 당시 월성원전 주변 주민들은 원안위 회의가 개최되는 날마다 관광버스를 타고 광화문 KT건물 앞에서 집회를 했다. 매번 10시에 열리는 회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동남쪽 바닷가의 버스는 새벽 3시 무렵에 출발했다. 1월 15일 버스 1대, 2월 12일 버스 5대, 2월 26일 버스 3대가 광화문까지 국토를 사선으로 왕복 운행했다. 2월 26일 버스에 올랐을 땐 주민들이 아침 식사 대용으로 생미역을 주셨다. 투쟁 자금이 바닥나서 돈을 아끼다 보니 저렴하게 포만감을 주는 생미역이 차례졌다. 1,000여 명의 주민이 월성원전에 앞에 모여 폐쇄 촉구 집회도 했다. 이 기간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은 홍보지 3종류 총 16,000장을 가가호호 거리거리에 뿌렸다. 그러나 월성 1호기는 지옥문을 향해 달리기로 했다. 절망과 분노가 교차하는 2015년 2월 27일 새벽이었다.

체르노빌 핵사고 29주기를 맞아 전국의 탈핵 시민들이 4월 25일 경주로 모였다. 약 500여 명이 경주역을 출발해 산봉우리 같은 왕들의 무덤을 지나 첨성대까지 약 2.5km를 행진했다. 다양한 인형과 탈을 활용한 탈핵 행진이 지금은 보편화했지만, 경주에서 행진할 때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행진 연출이었다. 이후 전국 단위의 큰 탈핵 행진은 장소익 선생의 큰 인형과 탈이 등장해서 외출 나온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날의 행진은 경주지역 탈핵 운동에 큰 힘과 위로를 안겨 주었고 ‘월성1호기 폐쇄 경주운동본부’ 결성으로 이어졌다.

그 열기는 재판에서도 나타났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이하 무효소송)에 경주 시민 210명이 참여했다. 소송비 1만 원과 주민등록 초본을 제출해야 참여 가능한 무효소송에 210명이 참여한 것이다. 서울이 아닌 이곳 경주에서 말이다.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2015년 5월 18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장이 제출됐고 총 2,167명의 국민이 원고로 참여했다. 경주 시민이 원고의 약 10%를 구성했다. 기나긴 법정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2015년 7월29일 만인소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앞서 광화문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2015년 9월7일 만인소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앞서 광화문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법정 투쟁이 시작될 즈음 경주지역 시민사회는 ‘월성1호기 폐쇄 경주운동본부’를 만들고 5월 13일부터 시청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천막농성과 더불어 시작한 대중운동이 만인소(萬人疏)였다. 천막농성만으로 부족하고 시민들의 의지를 모아야 하는데 서명운동 말고는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마지못해 서명운동을 결정할 때, 지금은 경주문화원 원장으로 계시는 김윤근 선생님이 만인소를 제안했다. 선생님은 당시 경주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이었다. 만인소는 조선 시대 안동지역의 유생들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1만 명의 서명을 받은 데서 유래한다. 일반 서명과 다르게 시민들은 붓으로 한지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게 된다. 이렇게 서명을 받은 한지 72장이 모여 만인소가 만들어졌다. 72장을 배접하는 데 3일이 걸렸다. 만인소를 완성하니 길이가 90m를 넘었고 10,181명의 정성이 담겼다. 순수하게 경주시민만 10,181명이다. 큰 한지, 붓, 인주를 들고 다니는 서명운동, 월성1호기 폐쇄 경주시민 만인소를 5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두 달 만에 이룩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7월 29일 경주시청에서 만인소 봉소식을 올리고, 9월 7일 버스 1대로 상경해 광화문에서 만인소를 펼치고 기자회견을 가진 후 청와대에 만인소 사본을 전달했다. 이처럼 경주시민은 굽힘 없이 월성 1호기 폐쇄 운동을 펼쳐나갔다.


<2015년 이전>

2011년 6월23일 양남면 주민들이 월성원전 1호기 폐쇄 촉구 집회를 한뒤 1호기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사진=경주포커스 DB
2011년 6월23일 양남면 주민들이 월성원전 1호기 폐쇄 촉구 집회를 한뒤 1호기 모형을 불태우고 있다.사진=경주포커스 DB

월성 1호기 폐쇄 운동의 역사는 9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2009년 4월 1일 경주시청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이 그 시작이다. 당시 시민사회는 월성 1호기 압력관 교체 중단을 요구했다. 월성원전의 압력관은 일반 원전의 원자로에 해당한다. 1983년 11월 21일 가동을 시작했으니 2012년 11월 20일이 30년 수명 마감이다. 그런데 수명을 3년 8개월 남겨놓은 2009년 4월 1일 압력관 교체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비는 6,000억 원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사 기간을 제외하면 2년 남짓밖에 가동 못 하는 원전에 6,000억 원을 쏟아부었다. 시민사회는 수명연장을 중단하라고 외쳤지만, 발전소 측은 끝까지 수명연장과는 무관한 공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훗날 서울행정법원은 압력관 교체를 수명연장을 위한 공사로 판결했다. 그러나 한수원의 입장은 지금도 변함없다.

이후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사고가 발생하면서 노후 원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때문에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심사는 무기한 늘어졌고, 재가동 승인을 받지 못한 채 2012년 11월 20일이 찾아 왔다. 당연히 발전소 가동은 중단됐다. 수명 마감을 100일 앞두고선 경주 시청 앞에서 “월성 1호기 수명 마감 D-100일”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고등학생부터 칠순 노인까지 경주환경운동연합 회원들과 관심 있는 시민들이 100일 동안 동참했다. D-day에 경주지역 시민사회는 작은 잔치를 벌였다. 그해 겨울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 후보들이 월성1호기 폐쇄를 공약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폐쇄 대신 유럽형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월성 1호기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2년 가까이 진행됐고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심사는 그만큼 길어졌다. 다급해진 정부는 결국 2015년 2월 27일 날치기로 수명연장을 결정했다.


<2015년 이후>

2015년 상경 집회, 무효소송 원고모집, 천막농성, 만인소로 이어졌던 경주지역의 월성1호기 폐쇄 운동은 2016년에도 계속됐다. 후쿠시마 5주기 대구경북 탈핵대회가 경주에서 개최됐고 크고 작은 캠페인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9월 12일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월성1호기 폐쇄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지진 공포에 귀가하지 못하고 공원에 텐트를 치며 노숙하던 시민들에게 지진보다 더 큰 공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원전 사고였다.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에 대한 우려는 매우 컸다. 폐쇄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차량 시위 등이 여러 차례 벌어졌다. 기자회견을 개최하면 일반 시민들이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해서 수십 명씩 참여해 시민운동에 힘을 실어 주었다. 경주환경운동연합의 회원도 늘어났다.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을 새롭게 만들고 9월 26일부터 12월 23일까지 경주시내 곳곳에서 1인 시위를 비롯해 다양한 캠페인이 펼쳐졌다. 이런 가운데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에서 ‘잘가라! 핵발전소 100만 서명운동’을 발기했다. 경주지역 시민사회는 10월부터 100만 서명운동에 적극 나섰다.

2016년 10월 22일 옛 신라백화점 앞에서 백만서명운동을 하는 모습.사진=이상홍 사무국장
2016년 10월 22일 옛 신라백화점 앞에서 백만서명운동을 하는 모습.사진=이상홍 사무국장

그해 겨울,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이 타올랐다. 경주역 광장도 시민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모든 사회적 의제는 촛불로 모아졌다. 우리는 촛불의 열기 속에서 월성 1호기 폐쇄를 외쳤다. 촛불이 승리하고 박근혜를 탄핵했다. 2017년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서 100만 서명운동도 중도에 멈췄다. 338,147명의 국민이 서명에 동참했고 경북지역 서명자는 11,971명이었다. 놀랍게도 경북지역 서명자 중 8,198명이 경주시민이었다. 인구대비로 전국에 가장 많은 서명을 받은 곳이 경주였다. 그만큼 월성 1호기 폐쇄의 염원이 높았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던 2017년 2월 7일 서울행정법원은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2,167명 국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5월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월성1호기 폐쇄를 공약했다. 그리고 드디어! 한수원은 2018월 6월 15일 이사회를 개최해서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했다. 지난 10년의 월성 1호기 폐쇄 운동이 결실을 거두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하다. 대통령 공약인 ‘원전 수명연장 금지’가 하루빨리 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그리고 월성 1호기 폐쇄와는 별개로 무효소송 항소심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원안위가 항소심을 취하하거나 2,167명 국민이 끝까지 승소해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