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지, 구황동 원지 유적일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예고
분황사지, 구황동 원지 유적일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예고
  • 경주포커스
  • 승인 2018.12.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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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지와 구황동 원지유적 일원 분포도.
분황사지와 구황동 원지유적 일원 분포도.

문화재청이 26일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와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慶州 九黃洞 園池 遺蹟 一圓)」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2건의 유적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지만 다른 시기의 다른 유적이다.
한때 구황동 원지가 분황사에 속한 사원지(寺園池)로 여겨진 적도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출토되는 다양한 유물의 시기를 추정하여 볼 때 두 유적은 별개의 것으로 밝혀졌다.

 「경주 분황사지」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분황사’가 있던 곳으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분황사’는 선덕왕 3년(634)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머무르면서 불법을 전파하였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1990년부터 2014년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경역 내·외부를 확인한 결과, 창건 당시 신라 최초의 품(品)자형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當式.사찰에서 탑을 중심으로 동·서·북면 세 곳에 법당을 배치하는 양식) 가람으로 축조되었음이 규명됐다.  그 후 세 번의 중건을 거쳐 광해군 원년(1609)에 현재의 금당인 보광전을 조성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분황사는 황룡사, 흥륜사 등과 함께 신라의 삼국통일 이전 왕경(경주)에 조성되었던 칠처가람(七處伽藍. 신라 불국토설(佛國土說)의 하나로, 경주에 있었던 7개소의 가람터(지금의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암사)의 하나이며, 국보 제30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장기간의 체계적 발굴을 통해 가람의 배치 양상과 그 변화상뿐만 아니라 경역의 대부분을 규명한 사찰로써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은 처음 경주 황룡사지와 관련한 전시관 건립 부지로 선정돼 1999년 시굴조사를 하던 중 통일신라 시대의 석축, 담장, 우물 등의 유적을 확인하고,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원지 유적이다.

원지는 중심부에 크고 작은 인공섬 2개가 있고, 그 주위에 입수로와 배수로, 건물지, 담장, 축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출토된 여러 유물을 통하여 원지의 조성 시기, 변화상, 공간배치 등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시대 조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구황동 원지는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에 이어 원지의 조성연대, 규모, 내부구조 등을 확인한 세 번째 신라왕경 원지 유적으로 희소성이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사적 지정 예고 개요

분황사지
분황사지 전경

□ 경주 분황사지
 ㅇ 지정명칭 : 「경주 분황사지(慶州 芬皇寺址)」
 ㅇ 지정종별 : 사적
 ㅇ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301-1 일대
 ㅇ 지정면적 : 문화재구역 42필지 30,681㎡
 ㅇ 관리단체 : 경상북도 경주시

 ㅇ 지정가치
분황사는 황룡사지와 더불어 신라왕경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신라왕경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유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문화유적들이 분포하고 있고 분황사에 대한 여러 문헌의 기록과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구와 다수의 유물은 신라시대 왕실가람으로서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임

구황동 원지유적
구황동 원지유적

□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
 ㅇ 지정명칭 : 「경주 구황동 원지 유적 일원(慶州 九黃洞 園池 遺蹟 一圓)」
 ㅇ 지정종별 : 사적
 ㅇ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292-2 일대
 ㅇ 지정면적 : 문화재구역 34필지 27,996㎡
 ㅇ 관리단체 : 경상북도 경주시
 ㅇ 지정가치
 2004년까지의 발굴조사로 드러난 연못, 수로, 건물지 등을 통해 신라시대의 원지 조성에 있어서 공간배치와 경관에 대한 구성요소를 확인할 수 있는 가치가 높은 유적이며 동궁과 월지, 용강동 원지와 더불어 원지의 조성연대, 규모, 내부구조 등을 확인 한 세 번째 신라왕경 내 원지 유적으로서 희소성이 있고, 출토된 여러 유물 등을 통하여 원지 조성시기, 변화상, 공간배치 등을 알 수 있어 통일신라시대 조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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