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해자에서 최고(最古) ‘의례용 배 모양 목제품’출토...
월성 해자에서 최고(最古) ‘의례용 배 모양 목제품’출토...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9.04.0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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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 방패 2점․목간 1점․63종의 씨앗 등도 확인
월성에서 출토된 배 모양 유물.
월성에서 출토된 배 모양 유물.
2일 설명회에는 월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2일 설명회에는 월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렸다.

경주월성 해자내부에서 의례에 사용된 가장 이른 시기(最古)의 축소 모형(미니어처) 목재 배 1점, 4~5세기에 제작된 가장 온전한 형태의 실물 방패(防牌) 2점, 소규모 부대 지휘관 또는 군(郡)을 다스리는 지방관인 당주(幢主)와 곡물이 언급된 문서 목간 1점 등이 출토됐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2일 지난해 추진한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정밀발굴조사 중 이같은 해자 내부의 발굴성과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축소 모형 목재 배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통나무배보다 발전된 형태로 실제 배와 같이 선수(뱃머리)와 선미(배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된 준구조선(準構造船. 통나무배에서 구조선(構造船)으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의 선박 형태)으로 크기는 약40cm정도였다.

연구소측은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배의 사례로 보아 이번에 출토된 유물도 의례용으로 추정했다. 배는 약 5년생의 잣나무류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제작 연대는 4세기에서 5세기 초(350~367년 또는 380~424년)로 산출했다.

방패모양 목제 유물.
방패모양 목제 유물.

방패는 손잡이가 있는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사례이자 가장 온전한 실물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것으로 꼽혔다.
2점 모두 수혈해자의 최하층에서 출토되었는데, 하나는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는 형태였다.
크기는 각각 가로‧세로가 14.4×73cm와 26.3×95.9cm이며, 두께는 1cm와 1.2cm정도였다.
표면에는 날카로운 도구로 기하학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붉은색‧검은색으로 채색했다. 또한, 일정한 간격의 구멍도 있었는데, 실과 같은 재료로 단단히 엮었던 흔적으로 보인다. 실제 방어용 무기로 사용했거나, 수변 의례 시 의장용(儀裝用)으로 세워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소측은 추정했다.

방패의 몸체는 둘 다 잣나무류(소나무속 연송류), 손잡이는 느티나무로 만들었으며, 손잡이가 있는 방패는 340~419년, 손잡이가 없는 방패 340~411년경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 3면에 묵서가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측이 묵서를 해석했다.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 3면에 묵서가 확인됐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측이 묵서를 해석했다.

목간은 3면 전체에 묵서가 확인됐다. 분석결과 곡물과 관련된 사건을 당주(幢主.소규모 부대지휘관이자 군(郡)을 관할하던 지방관리)가 보고하거나 받은 것이다. 6세기 금석문(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 적성비’)에 나오는 지방관의 명칭인 당주가 목간에서 등장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또한, 벼, 조, 피, 콩 등의 곡물이 차례로 등장하고 그 부피를 일(壹), 삼(參), 팔(捌)과 같은 갖은자로 표현했다. 앞서 안압지(현재 동궁과 월지) 목간(7~8세기)에서도 갖은자가 확인되었는데, 신라의 갖은자 사용 문화가 통일 이전부터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갖은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보다 획이 많은 글자로 금액이나 수량에 숫자 변경을 막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해자 호안의 흙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목제 구조물.
해자 호안의 흙 유실을 막기 위해 설치한 목제 구조물.

월성해자 내부에서는 해자 호안(기슭)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로 조성한 목제 구조물과 다양한 유물들도 확인됐다.
목제 구조물은 수혈해자 북벽에 조성했는데 수혈해자 바닥을 파서 1.5m 간격으로 나무기둥(木柱)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판재(板材)로 연결했다.
최대 높이 3m인 나무기둥과 최대 7단의 판재가 남아 있어, 대규모 토목 공사가 삼국통일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이 유물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신라의 목제 구조물 전체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연구소측은 설명했다.

또한, 해자 내부 흙을 1㎜이하의 고운 체질로 걸러 총 63종의 신라의 씨앗과 열매도 확보했다. 이는 국내 발굴조사 상 가장 많은 수량이다.
해자 주변의 넓은 범위에 분포했던 식물자료를 알아보기 위해 화분분석을 실시해 물 위의 가시연꽃, 물속에 살았던 수생식물(水生植物), 해자 외곽 소하천(발천 撥川)변의 느티나무 군락(群落) 등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파악했다.연구소측은 추후 경관 복원의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발굴과정에서 확인한 식물의 씨앗등을 근거로 한 복원 추정도
발굴과정에서 확인한 식물의 씨앗등을 근거로 한 복원 추정도.

연구소측은 물의 흐름‧깊이‧수질을 알려주는 당시의 규조(珪藻, 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를 분석하여 해자에 담겼던 물의 정보도 분석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신라인들이 가시연꽃이 가득 핀 해자를 보며 걷고, 느티나무숲에서 휴식을 취했을 5세기 무렵 신라 왕궁의 풍경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해자 내부에서는 6개월 전후의 어린 멧돼지뼈 26개체도 확인됐는데, 이는 신라인들이 어린개체를 식용(食用) 혹은 의례용으로 선호하였던 것을 시사해준다고 연구소측은 밝혔다.

삼국 시대 신라 왕경에서 최초로 확인됐던 곰뼈는 현재까지 15점(최소 3개체)이 나왔는데, 앞발과 발꿈치 등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활용한 것이 특징적이다.

수정원석.
수정원석.

이 외에도 2~3세기부터 분묘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는 수정(水晶)도 가공되지 않은 원석상태로 출토했고, 통일기 이후에 조성되어 사용된 3호 석축해자의 바닥 지점에서는 단조철부(鍛造鐵斧, 쇠도끼) 36점을 출토했다. 쇠도끼는 실제 사용 흔적이 있었다. 연구소측은 석축해자 축조과정 혹은 의례 등과 관련해 한꺼번에 폐기된 것으로 판단했다.

경주 월성 발굴조사(22만 2천㎡)는 올해로 5년차이며, 지금은 성벽(A지구)과 건물지(C지구), 해자를 조사 중이다. 이제까지 월성 C지구에서는 건물지를 비롯한 내부 공간 활용 방식과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걸친 층위별 유구 조성 양상이 확인됐다. 월성 해자는 물을 담아 성 안팎을 구분하면서 방어나 조경(造景)의 기능을 했으며, 다양한 의례가 이루어진 특별한 공간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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