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 무덤,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쪽 100m지점 폐고분"...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연구논문서 주장
"이차돈 무덤,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쪽 100m지점 폐고분"...박방룡 신라문화유산연구원장 연구논문서 주장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9.12.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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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방룡 원장이 이차돈의 묘라고 추정한 폐고분.
박방룡 원장이 이차돈의 묘라고 추정한 폐고분.
이차돈 묘라고 추정한 폐고분의 호석.
이차돈 묘라고 추정한 폐고분의 호석.

경주 소금강산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쪽 100m지점 산등성이에 있는 폐고분과 건물지가 신라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의 무덤과 사당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30일 발간한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자체 연구논문집인 ‘신라문화유산연구’ 제3호에서 박방룡 원장이  ‘이차돈(異次頓) 사인(舍人) 묘와 사당에 대한 단상’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이차돈 무덤에 대해서는 ≪삼국유사≫등 문헌을 통해 경주 금강산(소금강산)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동안 정확한 자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박 원장은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의 역사서에 기록된 이차돈 관련기록과 이차돈순교비, 김생의 글씨로 전하는 원화첩의 금석문 내용을 제시했다.

삼국유사 등에서 이차돈 묘는 ‘北山의 서령(西嶺’)으로 기록돼 있는데 즉 금강산 서쪽 산등성이는 백률사 남쪽 200m,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쪽 100m지점 폐고분이 확실하다는 것.

박 원장에 따르면 이차돈 묘는 오래전 도굴된 듯 봉분이 무너지고 일부 호석이 드러나 있다. 석실 천정부 전체가 함몰되고 측별 일부가 노출된 폐고분이다.

박 원장은 경주지역 묘제는 6세기 초반 무렵부터 평지의 적석목곽분이 소멸되고 표고 70~80m 정도의 구릉성 산지로 이동하면서 석실분으로 변천하는 단계였으므로, 527년에 조성된 이차돈의 묘로 봐도 고분의 구조나 형식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14년 발견당시의 이차돈 순교비. 현재는 경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14년 발견당시의 이차돈 순교비.(사진 위) 현재는 경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사진 아래)

 

박원장은 백률사에 있었던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차돈 순교비는 이차돈의 묘비였다고 주장했다.

고려후기 승려 각훈이 편찬한 ‘해동고승전’에서 “(경주) 금강령에 올라 이차돈의 묘와 비석을 보았고...”라는 기록을 근거로 여기서 언급한 ‘비석’이 이차돈 순교비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차돈 묘와 비석은 같은 공간에 있었음을 알수 있다고 주장했다.

1914년 이차돈 순교비를 백률사가 아닌 묘와 사당이 있던 '이차돈유적지'에서 경주박물관으로 옮겼음에도 대부분 문헌에서 백룔사로 잘못 표기하면서 발견장소가 잘못 인식된 것이라는 것.

박 원장은 구체적이고 신빙성이 있는 순교비 발견 장소에 대한 일제강점기의 기록을 찾아 그 장소가 폐고분과 건물지 일대라고 강조하면서 1914년 3월 경주박물관으로 옮기기 직전 촬영한 사진을 근거로도 제시했다.

즉, 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차돈순교비는 경주 금강산(소금강산)에 있는 이차돈의 묘 앞에 세운 사당에 있었던 것으로, 사당은 신라 헌덕왕 9년~10년(817~818년)에 건립돼 고려 말까지 존속됐으나 조선시대에 없어졌던 것으로 보았다.

이차돈 묘 앞 길이 20m 너비 18m 크기의 평탄한 공간이 있으며 주춧돌 3점과 주위에 기와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던 점, 자연석을 이용한 축대, 주춧돌 3점등을 사당이 있던 터라는 근거로 제시했다.

박 원장은 “앞으로 정밀학술 발굴 등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성역화사업을 통해 성인의 숭고한 뜻이 선양되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사당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
사당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
사당터 북쪽 석축.
사당터 북쪽 축대.

신라문화의 체계적인 발굴과 연구를 목적으로 경주시가 출연해 설립한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지난달 30일 발간한 논문집은 재직중인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공모, 중간발표 등 3차에 걸친 발표와 외부 심사를 거쳐 통과된 공모논문과 별도의 기획논문으로 구성됐다.

이번 논문집에는 이차돈 불교유적지 1편, 황룡사관련 4편, 신라 명문기와 1편, 신라 월지관련 1편, 조선시대 누정관련 2편 등 9편의 논문이 수록됐다.

△박방룡 원장의 ‘이차돈(異次頓) 사인(舍人) 묘와 사당에 대한 단상’ △조성윤 ‘신라 습부명 명문와(銘文瓦)의 의미’ △최은정 ‘경주 이요당(二樂堂)의 건립배경과 건축특성’ △최선희 ‘경주 귀래정(歸來亭)정원의 공간구성’ △김형석 ‘신라시대 월지(月池)의 원형 재검토와 정원고고학’ △김유성 ‘황룡사 창건가람의 재검토-줄기초 건물지를 중심으로-’ △박영경 ‘황룡사 출토 소조상편(塑造像片)에 관한 고찰-황룡사 남쪽 담장 외곽 정비사업 부지 출토 중심으로-’ △이민형 ‘신라 황룡사 대지(臺地)의 구조와 축조기술의 계통’ △김창섭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 보호ㆍ관리의 방향성 고찰- 세계유산협약 및 운영지침 요건의 관점에서 -’ 등 이다. 이들 논문은 신라왕경복원사업과 경주의 중요 문화재 복원·정비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내용이 수록됐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017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3년째 매년 발간하고 있다. 이같한 연구 성과에 힘입어 2019년 문화재조사연구부문 대상(문화재청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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