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샘 44호 고분, 금귀걸이 금은 팔찌 등 신라여성 호화장신구 무더기 출토
쪽샘 44호 고분, 금귀걸이 금은 팔찌 등 신라여성 호화장신구 무더기 출토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0.12.0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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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샘 44호분 금귀걸이.
쪽샘 44호 고분 금귀걸이.
쪽샘고분발굴관
 쪽샘 44호 고분은 쪽샘 발굴관으로 공개되고 있는 곳이다.

 

쪽샘 44호 고분에서 금동관(1점), 금드리개(1쌍), 금귀걸이(1쌍), 가슴걸이(1식), 금ㆍ은 팔찌(12점), 금ㆍ은 반지(10점), 은허리띠 장식(1점) 등 장신구 조합, ▲ 비단벌레 딱지날개로 제작된 금동 장식 수십 점, ▲ 돌절구‧공이, ▲ 바둑돌(200여 점), ▲ 운모(50여 점) 등이 출토됐다.

이고분은 발굴현장을 일반에게 공개하는 쪽샘 유적발굴관이 있는 곳으로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들의 조합은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서 나오는 장신구 양식들이라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밝혔다.

2014년부터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이같은 발굴성과를 설명하면서 특히, 가슴걸이는 남색 유리구슬과 달개가 달린 금구슬, 은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달았는데 이러한 형태는 황남대총이나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 무덤에서만 확인되었던 디자인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소측은 장신구의 구성(조합상)과 재질 등을 고려할 때, 44호의 주인공은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축조기의 최상층(왕족)으로 추정되며, 장식대도가 아닌 은장식 도자(刀子:작은 손 칼)를 지닌 것으로 보아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출토유물을 기준으로 한 피장자의 신장(身長)은 약 150㎝ 전후로 추정되는데 금동관, 귀걸이, 팔찌, 허리띠 장식 등 장신구의 크기가 전반적으로 작은 점도 피장자가 여성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장신구 크기가 작은 점은 기존 조사 사례 중 금령총과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금은팔찌 매장 모습.
금은팔찌 매장 모습.

44호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연대는 출토된 토기, 금귀걸이나 금팔찌의 형태로 보아 금관총 출토유물과 유사한 점으로 비추어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

이번에 또다른 주목할만한 유물은 비단벌레 장식인데 주인공 머리맡에 마련된 부장궤(副葬櫃, 부장품 상자) 상부에서 수십 점이 확인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 2매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앞뒤판 둘레를 금동판으로 고정하여 만든 장식이다.
크기는 가로‧세로 1.6×3.0cm에 두께는 2㎜정도 소형이며, 신라 고분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바가 없는 형태와 크기의 장식이다.
비단벌레 장식은 기존 신라 고분에서도 황남대총 남분, 금관총, 계림로 14호 등 최상급 무덤에서만 출토된 바 있어 이번 44호 피장자의 위계를 상징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유물로 판단된다고 연구소측은 설명했다.

비단벌레 금동장식.
비단벌레 금동장식.

또한 지금까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비단벌레 장식은 모두 마구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번 비단벌레 장식도 안장이나 장니(障泥 말다래)에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

돌절구와 공이는 주인공 머리맡 부장궤(副葬櫃) 안 철솥 바로 옆에서 함께 확인됐다. 돌절구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로로 긴 형태이며, 화강암을 연마하여 위쪽에 얕은 함몰부를 만들었다. 돌절구의 크기(높이 13.5cm, 폭 11.5cm)와 함몰부의 용량(약 60ml)으로 보아 곡물을 빻는 실질적인 용도라기 보다는 상징적 의미로 부장되었을 수도 있고, 약제를 조제하는데 사용한 약용 절구(현대의 막자사발과 같은 용도)로 추정됐다.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사례는 황남대총 남분에서 돌절구ㆍ공이 1묶음, 서봉총에서 공이 1점이 확인된 바 있다. 이외에 출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국은(菊隱) 이양선 박사(1916~1999)의 기증 유물 가운데도 돌절구와 공이 1묶음이 있다.

바둑돌은 피장자 발치 아래에 부장된 토기군(土器群) 사이에 대략 200여점이 모여진 상태로 확인됐다. 크았기는 지름 1~2㎝, 두께 0.5㎝ 내외이고 평균적으로 1.5㎝ 정도의 것이 가장 많다. 색깔은 크게 흑색, 백색, 회색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됐다.

과거에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243점), 천마총(350점), 금관총(200여점), 서봉총(2점) 등 최상위 등급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된적이 있다.

이후 시기로 넘어가면 7세기대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인 용강동 6호분(170점)에서도 확인됐고, 분황사지에서는 가로ㆍ세로 15줄이 그어진 바둑판 모양의 전돌이 출토되기도 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효성왕(재위 737∼742)대 기록에 효성왕이 바둑을 뒀다는 내용과 신라 사람들이 바둑을 잘 둔다는 내용 등이 확인되는데. 이번 바둑돌은 기록에 전하는 신라인들의 바둑문화에 대한 실물 근거자료가 될 것으로보인다.

다만, 그동안 바둑돌이 출토된 무덤의 피장자는 모두 남성으로 추정되어 당시 바둑이 남자의 전유물로 이해되기도 하였지만, 이번 피장자는 왕족 여성으로 추정되고 있어 바둑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료로도 기대된다.

2014년부터 진행한 이번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분 발굴조사는 올해로 7년차이고, 현재 매장주체부 유물 노출까지 진행됐다. 그동안 호석(護石) 주변에서 행해진 제사흔적, 봉분 성토방식, 적석부 구조와 축조방식, 다양한 지점에서의 의례행위 등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중대형 적석목곽묘의 구조와 축조방식을 복원할 수 있는 다양한 근거자료를 확보하였고, 이번에 공개하는 유물을 통해서는 당대 신라 최고 지배층 사회의 장묘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바둑알 출토모습.
바둑알 출토모습.
돌절구와 공이
돌절구와 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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