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박상진의사 묘 진입로 정비추진...주낙영 시장 간부회의서 지시
경주시, 박상진의사 묘 진입로 정비추진...주낙영 시장 간부회의서 지시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1.03.0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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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의사의 묘.
박상진 의사의 묘.

경주시가 내남면 노곡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박상진의사의 묘 진입로를 정비한다.

3일 경주시에 따르면 주낙영 시장은 2일 열린 간부회의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앞당긴 박상진 의사의 묘역이 경주에 있었지만, 그동안 행정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늦었지만 묘역 진입로 정비를 통해 박상진 의사가 이룬 업적을 상세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박상진 의사는 1884년(고종 21)년 울산 송정리에서 태어났지만, 4살때 백부의 양자로 입적돼 외동읍 녹동리에서 자랐다.
영남 지역의 명망 있는 유학자로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가 사형 집횅된 허위의 문하에서 수학했고, 1910년 양정의숙을 졸업하면서 신학문도 익혔다.  졸업후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 근무를 발령받았으나 판사 임용을 거부하고 사퇴한 뒤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5년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을 맡았다. 무장혁명을 위한 군자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칠곡군 부호 장승원,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 면장 박용하(朴容夏), 전라남도 보성군의 양재학, 낙안군의 서도현을 처단했다. 1915년 경주에서 대구로 향하던 세금 마차를 습격한 것도 해방후 대한광복회가 실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1918년초 전국의 조직망이 발각돼 채기중·김한종(金漢鍾) 등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4년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1년 8월11일 대구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돼 순국한 독립운동가다.

박상진 의사 묘 입구. 붉은 원이 있는 곳에 묘가 있다
경주 정씨 시조묘 맞은편에 있는 박상진 의사 묘 입구. 붉은 원이 있는 곳에 묘가 있다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에 있는 묘 입구 이정표와 안내판은 울산청년회의소가 제작해 설치했다. 경주시 내남면과 외동읍을 잇는 지방도에서 묘까지 300미터에 이르는 진입로는 폭이 좁아 승용차 1대만 겨우 다닐수 있다. 신경주역에서 외동읍까지 4차선 도로가 의사의 묘 바로앞을 지나고 있다.

이런점 때문에 울산시 북구청과 기념사업회등에서는 울산으로 묘 이전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주낙영 시장은 안강읍 산대리 소재 '안강 공용화기 군사격장' 소음 피해문제와 ‘도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충효지구 도시개발사업’ 부진에 대해서도 직접 점검했다고 경주시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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