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① 꿀밤나무를 찾아서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① 꿀밤나무를 찾아서
  • 경주포커스
  • 승인 2021.10.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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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① 꿀밤나무를 찾아서

글쓴이 : 조정임. 작가.경주우체국소포실장.
2013년4월부터 2014년5월까지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연재.

슬픈 반어법이다. 쓰디 쓴 도토리를 어머니는 늘 꿀밤이라 했다. 이보다 더 처절한 반어법이 어디 있으랴.
가난했던 시절 도토리 죽으로 끼니를 때웠던 적이 많았던 어머니에게 허기를 달래 준 도토리는 그것만으로도 꿀밤이었으리. 그래서 그의 이름이 꿀밤이리라.

병석에 계신 어머니가 몇 일째 곡기를 끊었다. 음식만 봐도 손사래를 치더니 어릴 때 먹었던 꿀밤 죽 한 그릇 먹어봤으면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어릴 때 물리도록 먹었을 텐데 먹거리가 이렇게 흔해진 아직도 그 맛이 그리울까? 또 모르지. 씁쓸한 것을 먹으면 입에 침이 고이며 잃었던 입맛이 돌아올지도.
어쩌면 어머니는 먹는 것 보다 지금쯤 뒷산에 지천으로 떨어져 있을 도토리가 눈에 선해 하는 말씀일지도 모른다. 해마다 이맘때면 직접 주운 도토리로 묵을 쑤어 자식들에게 나눠주시곤 했으니 운신이 불편한 게 못내 아쉬울 것이다. 그래서 해보는 말씀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나는 꿀밤을 주우러 어릴 적 오르내리던 뒷동산에 올랐다.

유년시절 시골마을에서 살았던 나는 부모님을 따라서 곧잘 산에 올랐다.
이른 봄에는 산나물을 뜯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사리를 잘도 꺾었다. 여름이면 개울에서 물장구치며 놀다가 허기지면 머루랑 다래를 따 먹으며 해가 빠지도록 산을 헤매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가을이면 산은 더욱 풍성했다. 밤이며 개암이며 토실토실 알이 찬 열매를 주머니 가득 주워 넣고 만지작거리면 산동네의 사계는 쉴 틈 없이 돌아가곤 했었다. 그런 까닭에 난 또래보다 훨씬 나이가 많거나 아주 아주 깡촌에서 자랐단 오해를 받곤 한다. 지금도 어느 산에 가더라도 산나물 한 보따리 정도는 뜯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산나물을 알고 있다. 더구나 꿀밤, 그 꿀밤나무를 종류별로 구분해내는 사람이 몇 있을까. 나는 그것들을 곧잘 구분해낸다.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등.

결혼을 하고 난후부터는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할 때나 산에 오를까 딱히 산에 오른 적이 없으니 길을 나서긴 했지만 막막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이내 좁은 산길로 이어졌다. 초입부터 우거진 수풀이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음을 짐작케했다. 예전만 할까? 땔감을 하러 갈일도 산에서 먹거리를 찾을 일도 없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우거지 수풀을 헤치고 산짐승들이 드나드는 오솔길을 찾아 산길을 걸었다. 산은 마을 공동 소유였으며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참나무 군락과 소나무가 공존하는 평범한 산이었다. 산등성이 신갈나무는 이제는 고목이 되었으리라. 산에 오르기만 하면 꿀밤 한 되쯤 줍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일거라 기대를 하면서 스치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손을 뻗어 서로 교감하며 그렇게 산에 올랐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전두엽으로 뻗어있는 말초 혈관 하나가 막혀서 괴사하고 말았다. 흔히들 말하는 중풍이 온 것이다. 엊그제가지만 해도 언덕빼기 밭에서 일을 하던 노인네가 그만 쓰러져 수족을 움직이지 못하고 대소변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본인에게나 자식인 우리들에게나 너무 갑작스런 일이었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제각각 일상에 바쁜 우리들은 간병인의 손에 어머니를 맡기고 시간 날 때 삐꿈 들여다 보는 것으로 자식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생각했던 목적지가 눈앞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지만 어딘지 익숙하고 낯익었다. 숲이 우거져 길이 보이지 않았지만 워낙에 제집처럼 드나들던 곳이라 기억만으로도 나는 길 없는 길을 더듬어내었고 드디어 참나무 군락지에 다다랐다.

바람이 불자 우두둑 우두둑 꿀밤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성급하게 나무 밑으로 뛰어들던 내 정수리를 정통으로 가격하는 꿀밤하나, 다람쥐의 양식을 탐하러 온 좀도둑으로 보였을까? 잎이 무성한 상수리나무 한그루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그럴게, 안 그래. 울 엄마 드릴 죽 한 그릇 쑬 만큼만 주워갈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아이를 다루듯 나무 둥치를 어루만졌다. 단푼 든 나뭇잎을 내 머리위로 떨구는 폼이 영락없이 그러라고 허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낙엽사이로 알알이 떨어져 있는 꿀밤들을 정신없이 주워담았다. 눈대중으로 봐도 한 되박은 너끈히 되는 듯 보여 이제 그만 줍기로 했다. 배낭에 넣고 그제야 한숨을 돌리며 열매를 나눠 준 나무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네듯이 쳐다보았다. 거스를 것 없이 하늘로 쭉쭉 뻗어 있을 줄로만 알았던 꿀밤나무는 이름모를 넝쿨들이 가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게다가 한쪽 가지는 말라비틀어져 영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았다. 병석에 있는 엄마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되었다. 지나친 감정이입인 것 같아 헛웃음이 나왔지만 영영 재생할수 없는 마른 가지와 엄마의 막혀버린 뇌혈관 하나는 같은 처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머니도 이제 나무로 치면 수령이 그만하니 곁가지 하나쯤 부러질수도 말라 비틀어질수도 있다.70여년 세월 한결같이 한그루 고목처럼 큰 그늘이 되어주셨던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생계까지 떠맡게 된 엄마의 두 어깨가 너무 무거워 늘 힘에 겨워보였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참나무 사이로 비치는 가을 햇살이 너무 투명하여 눈물 겹다. 갑작스런 뇌경색만 찾아오지 않았다면 내가 아니라 어머니가 꿀밤을 주우려고 이산을 헤매고 계실지도 모를 일이다. 꼼짝없이 누워있는 엄마는 내가 쑨 꿀밤 죽이 입에는 맞을까 ? 얼른 하산하여 떫고 쓴 맛부터 우려내어야겠다.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니 기립성 빈혈인지 순간 어찔하였다. 빙그르르 돌고있는 하늘 언저리 마른 가지 끝에도 잎이 돋았었나 보다. 빛 고운 낙엽하나가 걸려 있다. 엄마도 저렇게 다시 일어설수 있을 것이다. 아니 꼭 일어나실 것이다. 아직은 꿀밤같이 설익은 자식들이 엄마에게 줄줄이 달려있으니까.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는, 매월 26일 연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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