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② 낚시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② 낚시
  • 경주포커스
  • 승인 2021.11.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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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 ② 낚시

글쓴이 : 조정임. 작가.경주우체국소포실장.

2013년4월부터 2014년5월까지 경주포커스에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연재.

엄태헌.공유마당. CC BY
사진 : 엄태헌.공유마당. CC BY

그들의 아침잠을 깨우고 말았나보다. 청둥오리 몇 마리가 철퍼덕거리며 고요한 저수지에 물이랑을 만들고 있다. 파문은 우리가 자리 잡은 저수지의 구석진 곳까지 그들의 기침(起枕)을 알리러 왔다. 산 그림자가 내려앉은 잔잔한 수면위로 아침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반짝거린다. 순간 눈이 부셔 찡그리며 수심을 살피는 내 이맛살의 주름도 역시 물결 모양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아침이 찾아든 저수지는 매끈한 여인네처럼 도도해보여서 나는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서 조심스럽게 저수지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낚시 광이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낚싯대를 챙겨 바다로 강으로 홀로 집을 나선다. 남편의 유난스런 취미생활 때문에 결혼 후 줄곧 아이들과 나는 늘 남편이 없는 휴일을 보내야만했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나도 남편을 따라서 별 재미도 없는 낚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방해만 된다고 떼어놓고 가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혼자 줄행랑을 치곤하더니 어느 순간 포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말벗이 필요했는지 알 수 없지만 초보자용 낚싯대를 마련해주며 가끔은 동행을 해 주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낚시란 하릴없이 시간만 죽이는 일처럼 느껴져 도무지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어울려 개울에서 첨벙대며 하던 천렵보다 흥미롭지 못한 고기잡이 놀이에 불과했다. 남편이 적당한 자리를 잡고 낚싯대를 설치하는 동안 나는 제방둑길을 따라 산책을 하면서 잔잔한 저수지의 아침풍경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집에서 멀지않다는 이유로 자주 찾는 곳이지만 나는 그렇다 치고 낚시광인 남편도 역시 이 저수지에서 제대로 된 손맛을 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남편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몇 시간째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다. 저 무념의 자세가 새삼 존경스럽다.

엊그저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 낚였어” 중간고사 성적표를 쑥 내밀며 아들 녀석이 던진 첫마디였다. 특별히 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닌데 공부만큼은 똑 부러지게 하는 아들 녀석이 늘 대견스러워 나는 성적에 대해선 좀처럼 타박을 하지 않는다. 아들이 내민 성적표를 자세히 보니 사회를 제외한 전 과목이 만점이었다. “잘 했는데 왜?” 하고 이유를 묻자 아들은 한 문제가 틀려 올백을 놓쳐버린 것이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낚였다는 표현을 하는걸 보니 아리송한 문제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모양이다.

남편을 따라 낚시를 다니면서 나는 물고기들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먹이사슬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그들의 세상에서 포식자와 피식자가 서로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깟 인공으로 만들어 낸 떡밥에 솔깃해 할까 의아했는데 신기하게도 떡밥은 물론 루어(가짜 미끼)조차도 덥석 덥석 물고 만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제 딴에도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 엇비슷한 지문에 헛갈려 오답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낚였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았다.

그 사이 남편은 몇 번이고 자세를 바꾸고 미끼를 갈아 끼우는 것 같았지만 이렇다 할 입질은 없었다. 요즘은 세상이 온통 낚고 낚이는 낚시터라 어린 아이들조차도 낚였다는 말을 유행어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값비싼 채비를 갖추고 앉아서도 피라미 한 마리 낚지 못하는 남편도 어쩌면 낚시에는 특별히 다른 재주가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미끼를 던져놓고 기다리는 것 밖에.

아들은, 어려운 문제가 아닌데 엇비슷한 지문에 헛갈려 오답을 선택하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낚였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았다.

낚시터에 나가보면 물고기를 낚는 방법이 실로 다양하다. 대를 이용해 근거리에서 낚기도 하고 릴낚시로 저 먼 곳까지 먹이를 던져놓기도 하고 때로는 배를 타고 나가 유혹하기도 한다. 떡밥을 이용하기도 하고 지렁이와 바늘을 이용하기도 한다. 도구만 놓고 말하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가롭게 노닐던 그들의 눈을 현혹시킬 만한 매혹적인 미끼인 것 같다.

그러니 오늘은 남편이 준비한 미끼가 영 시원찮은 모양이다. 여전히 거북이처럼 목을 쭉 빼고 앉아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다른 일에는 잠시 잠깐도 기다리지 못하는 급한 성미인데 낚싯대만 드리우면 저렇게 처연해지니 그건 또 무슨 조화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그 사이 텐트에 앉았다 낚싯대 앞으로 자릴 옮겼다가 다시 커피를 마시다가 책을 읽다가 남편에 비하면 나는 꼭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왔다갔다 부산스러웠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조금 차졌다. 나는 무릎담요를 들고 다시 낚싯대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마침 찌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입질이 온 것이다. 남편은 어느 새 일어나 힘껏 낚싯대를 당겨 올렸다. 야위고 조그만 붕어 한마리가 낚싯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달려 올라오고 있었다. 오랫동안 먹잇감을 찾아 물속을 헤엄치고 다녔던 모양이다. 겨우 싸구려 떡밥을 덥석 물고 싶도록 허기가 졌나보다. 아니면 그보다 더 절실한 사연이 있었을까? 뭍으로 나온 붕어는 파닥거리며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나는 며칠 전 보이스피싱을 당한 어떤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파닥거리다 기운이 빠진 듯 잠잠해진 붕어는 마치 그날의 할아버지처럼 슬픈 눈빛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당한 할아버지에게 미끼는 '아픈손가락' 늦둥이 아들

며칠 전 창구에서 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보이스피싱에 보기 좋게 낚여버렸다. 돈을 송금해주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알고는 망연자실하는 것이 거의 실신할 것만 같았다. 그 날의 미끼는 늘 아픈 손가락이던 늦둥이 아들이었다. 평소에도 주먹질깨나 하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그 아들이 폭행사건에 연류 되어 당장 합의를 하지 않으면 입건된다는 전화를 받았으니 꼼짝없이 낚이고 말았던 것이다. 돈이 문제였을까? 그들이 시키는 대로 부랴부랴 달려와 은행원에게는 말하지 말고 자동화창구로 바로 가라는 그들의 주도면밀한 지시대로 전 재산을 아들의 합의금으로 이체시켜 줘버렸단다. 손쓸 틈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방법은 교묘해지고 미끼도 다양하여 직원들도 고객의 피해를 막으려고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날은 피해를 막지 못했다. 평생 사고뭉치 아들 치다꺼리에 전 재산을 탕진했다고 하니 노인네가 가진 돈이라야 어떤 이에게는 푼돈일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생의 의욕을 잃을 만큼 절실해보여서 몸져누우실까 그게 더 걱정이 되었다. 어떤 위로도 할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자식만한 미끼가 어디 있으랴.

보이스피싱은 분수에 맞지 않는 허황된 꿈을 꾸는 이를 노린 일확천금이란 미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끼가 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절실한 미끼가 눈과 귀를 이미 막아버려서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 뻔히 보고도 당할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그런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을 원망도 해본다.

내가 하는 어설픈 낚시질에 걸려 든 물고기도 어쩌면 절실함에 눈이 멀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보이스피싱을 노리던 그들과 뭐가 달랐을까? 한때나마 나의 낚싯줄에 매달려 버둥거리던 배스를 보고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무렵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남편은 그때까지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주섬주섬 낚싯대를 걷으며 내 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 잡아놓은 붕어 몇 마리를 다시 저수지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다시는 서툰 유영으로 그물에 걸려들지 않기를, 싸구려 떡밥에 눈독들이지 않기를, 저수지 밖 낯선 세상을 꿈꾸지 않기를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주문을 외었다.

어둠에 사위어 가는 저수지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낚시를 그만두기로 했다.

 

연흥도 43.채지형. 공유마당. CC BY
연흥도 43.채지형. 공유마당. CC BY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는, 매월 26일 연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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