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패럴림픽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패럴림픽
  • 경주포커스
  • 승인 2012.11.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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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정갑식, 런던에서 전해주는 영국 이야기 2

1, 런던 올림픽 관전기 – 경쟁 구도의 올림픽 그러나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패럴림픽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그냥 읽고 지나가면 마음에 와 닿은 말일 뿐 이다. 한 마디로 누구나 할 수 있는 폼 나고 멋진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두 번 그리고 세 번 읽고 나면 그냥 멋지고 폼 나는 말이다 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굵직한 단어들이 너무 많다. 성공, 승리, 노력, 인생, 정정당당, 최선 등등의 단어들이다. 단어가 주는 어감들이 다소 활기차고 통상적으로 문장의 대미에 있어야 할 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but – 아니라’ 와 ‘so - 따라서’ 두 접속사만 만들어 내는 문맥의 선명한 대비 는 전달 하고자 하는 내용을 산뜻하게 만들어 아주 맛깔 나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들이 주는 말의 절대미학은 이 말을 한 당사자자가 누군가 인가를 알게 될 때 또 다른 멋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즉 말한 당사자를 알게 될 때, 지식인의 확장된 사고는 다른 의미의 공간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각자의 생각들이 만들어내는 그 공간의 영역에 따라 이견이 생길 수 있는데, 사실 지식인들이라면 그 정도의 이견은 즐길 수 있는 내공과 아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궁극적으로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상승적 시너지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으므로 말이다.

 
 필자는 경주 출신으로 영국 옥스포드부룩스 대학에서 ‘음식 과 문화’ 에 관한 연구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런던에서, Eating, Dinning out Trend 분석 전문 컨설턴트 회사인 Fashionfood 21 Ltd 의 수석 컨설턴트(Directing Consultant)로 활동 하고 있다. ESSEN, 주간조선, 주간경향, 마이다스 등의 잡지에 음식과 사회, 음식과 문화에 관련하여 다양한 주제로 기사와 칼럼을 적고 있다.
서두에 거창하게 걸어 놓은 저 말은 바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이 한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쿠베르탱이 설파한 저 멋있는 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근대 올림픽의 표어는 ‘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 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 라는 이 표어가 그리 달가운 마음으로 이해를 하기가 극히 불편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합리적인 철학과, 이성적인 사고로 지구촌 축제 올림픽을 심각하게 분석하고 성찰해 보면 오늘날의 올림픽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든 측면에 상당히 오염되고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하드웨어라 할 수 있는 IOC 는 너무 거대한 집단이 되어 돈 벌이를 하는 BUSINESS 집단으로 전락 된지가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리고 힘있는 대륙과 국가들은 더 많은 메달을 따고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서 심판과 집행부에 영향력을 행사 하기도 한다. 오심은 번복이 되지 않고, 더구나 의도된 오심이라 의심이 가는 일들이 약소국을 상대로 벌어지는 일들이 다반사 이다.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선수 그리고 게임은 오직 금메달만을 향해서 질주를 할 뿐이다. 금메달 지상주의 잔치를 보는 마음은 즐거운 일이 되지 못했다. 오죽하면 튼튼한 근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금지된 약물까지 복용하는 사례가 발생하는 사태까지 온 것이 작금의 올림픽이다. 따라서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왜곡된 의미가 선수 개인과 집단 나아가 국가들에게 더 빨리 부와 명예가 오고, 더 높이 자국의 권력과 위상이 올라 가고, 더 멀리까지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음모가 IOC 내부에서 난무 하는 것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올림픽의 슬픈 자화상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은 과연 지나간 과거에 불과 한가. 진보 하는 시대에 살면서 퇴락 하는 올림픽을 4년 마다 한 번식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신은 항상 인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판도라의 상자 맨 아래쪽 구석에 남겨 두었다. 우리가 어렵지만 살아 갈 수 있는 이유들이 삶에 존재 하듯이, 본류에서 벗어나 본질이 오도된 올림픽과는 달리 인간 승리의 눈물을 볼 수 있는 범 국제적인 스포츠가 있다. 바로 패럴림픽 이다. 전세계 장애인들의 축제, 불구의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역경을 물리치고 빛을 향하여 희망을 달려온 사람들의 승리 신화가 감동의 물결처럼 전개되는 스포츠가 바로 이 패럴림픽 이다. 금메달을 목에건 선수를 위한 환호가 절대적인 분위기로 경기장에 울려퍼지는 올림픽과는 달리 패럴림픽은 잔잔한 감동 그러나 뜨거운 열정이 눈물이 되어 마음을 적신다. 선수, 코치, 가족 그리고 경기를 지켜 보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진정한 스포츠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

불구의 몸들이 세상을 향해서 던지는 메시지는 참으로 많다. 정상인들의 잔치라 할 수 있는 올림픽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스포츠 정신이 얼마나 많은가?. 삶과 세상의 철학을 우리는 의외로 본류에서 소외된 자, 주류에서 밀려난 자, 빛을 등지고 살아온 삶의 이력을 가진 이들 장애인들에게서 담담하게 보고 배운다. 사실 올림픽에서 놓친 중요한 사실들을 장애인 올림픽 패럴림픽에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확인을 하는 셈이다. 스포츠는 오로지 경쟁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범 지구인들의 축제인 올림픽은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아야 한다. 선수들은 금메달 만이 승리의 모든 것 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다.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펼치는 질주의 레이스, 앞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청각에 의지 하면서 공을 차는 모습들, 한 쪽 팔이 없는 사람이 물살을 가르면서 보여주는 수영장, 휠체어에 앉아서 원반을 던지는 상의 용사의 늠름한 모습,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수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심판 그리고 공정한 경기 진행 요원들 이들 모두가 한 몸이 되어 보여주는 장면 장면들은 감동의 드라마 이상 이다.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이제 이 글의 서두에 걸어 놓은 쿠베르탱의 이 말은 훨씬 더 의미 있는 내용으로 우리들에게 다가 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라는 올림픽의 구호가 얼마나 무색하고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내포 하고 있는가 또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온몸이 마비가 되어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번 제 14회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의 화두로 ‘호기심’을 이란 말을 던졌다.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의 화두로 던진 이 ‘호기심’은 세상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 이다. 영국 사람들은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 ‘호기심’ 이란 말에 찬사를 보냈다. 단절된 세상에 갇혀 버릴 때 꿈, 희망, 미래, 증진, 진보, 개척, 발전 등등의 단어들이 살아 되돌아 올 수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세상을 향한 의지 일 수 있다. 14회 런던 패럴림픽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긍정적인 요소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었던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축제였다.

사실 16년을 영국에서 살아온 필자의 시각으로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정상인들의 축제라 할 수 있는 이번 30회 올림픽 축제의 개막식은 지나치게 Great Britain 만을 내세워서 내심 불편하였다. 그리고 하계 올림픽 기간 내내 끊이지 않고 반복하여 야기된 집행부의 잡음과 IOC 의 미숙한 운영 방식은 축제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 했다. 그렇지만 14회 패럴림픽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영국인들의 성원과 격려는 올림픽 기간 내내 유쾌할 수 없었던 장면들을 일부 상쇄 할 수 있었다고 생각 한다.

패럴림픽 과 올림픽, 두 개의 축제를 개최국에서 보면서 묵직한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스포츠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2016년 브라질에서 우린 또 다른 올림픽을 볼 것이다. 영국과 브라질은 분명 다르다. 그리고 영국의 문화와 브라질의 문화도 분명 다르다. 그러나 4 년 후, 31회 하계 올림픽과 15회 패럴림픽은 동일하게 세계인들의 관심 속에서 또 다른 축제로 우리들에게 다가 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긍정적인 발전을 보여 줄 것인가 그것이 남은 4 년 간 우리 모두가 해결 해야 할 숙제로 남겨진 셈이다. 잔잔하고 눅눅한 영국 사람들 이지만 올림픽의 열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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