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 복원... 감은사 일대 문무왕 유적 성역화 해야
용지 복원... 감은사 일대 문무왕 유적 성역화 해야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3.04.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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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지 실존 가능성...본발굴 , 성역화 요구 거세질 듯

▲ 문무대왕 성역화 추진위원회등 관계자들이 12일 용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설명회를 하고 있다. 현장 너머로 감은사 삼층석탑(동탑)이 보인다. 인근에 이견대, 문무왕릉등이 있음을 가리키는 교통표지판이 보인다.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용지(龍池)로 추정되는 곳에서 실재로 용지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뒷받침 하는 유물이 다수 수습돼 전면 발굴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신라김씨전국연합,신라종묘역사문화관건립추진위원회,신라문화동인회등이 참여하고 있는 용지복원운동협의회와 감포 양남 양북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무대왕 유적성역화 추진위원회가 12일 공개한 유물은 통일신라 7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 국화문기와, 고려시대로 예상되는 숫막새 기와편을 비롯해 오래된 유기물질 퇴적층과 나무조각, 용(龍)자와 신(神)자를 먹으로 쓴 목간등이다.

특히 이 목간은 용지가 그후 주술적인 기도처로 사용된 곳임을 뒷받침 하면서 용지의 실존가능성을 더욱 높게 하는 자료료 평가받고 있다.

▲ 용지 추정지에서 수습한 목간. 용(龍) 신(神) 으로 추정되는 글씨가 보인다.

▲ 용지 추정지에서 발굴한 기와편과 전돌.

용지로 추정되는 유적지는 사적 제31호 감은사지에서 사적 제158호 문무대왕 수중릉 방향으로 약 200m 지점에 이견대 및 대종천 제방과 인접해 있으며, 거듭된 태풍과 경지정리, 도로개설등으로 매몰이 진행된 곳이다.

욕지복원운동협의회가 주장하는 대로 용지는 과연 실재로 존재했을까?

문무왕과 감은사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한다.
<삼국사기>문무왕 21년(681년)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7월1일 왕이 돌아가시므로…그 유언에 다라 동해 어귀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세상에 전하기를 용으 로 화(化)하여 나라를 지킨다고 하여 그 바위를 가리켜 대왕암이라 했다.

<삼국유사. 만파식적 조에는 문무왕이 아들 신문왕에게 만파식적을 내렸다는 기사 앞에 이렇게 씌어 있다.
681년 7월7일 즉위한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대왕을 위하여 동해변에 감은사를 세웠다. 사중기에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이 절을 짓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 바다의 용이 외었는데, 그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여 682년에 마쳤다. 금당계단 아래를 파헤쳐 동쪽에 한구멍을 내었으니 그것은 용이 들어와 서리게 하기위한 것이다. 생각건대 유조로 장골케 한 곳을 대왕암이라 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으며 그후 용이 나타난 것을 본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있는 감은사지 설명에서는 '용의 왕래'가 언급된다.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 2000년대 초반 항공사진. 감은사아래 용당과 용지 추정지, 문무왕수중릉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무대왕 유적성역화 추진위원회는 용당과 용지 사이에 수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장이 그린 용지 추정도.

감은사가 있는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의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도 용당, 용지,수로와 과련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주시 홈페이지 설명이다.
용당리(龍堂里)  =신문왕의 부왕인 문무왕의 成龍護國의 유언에 의해 수중릉을 만들고 유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를 창건하여 용이 출입할 수 있는 지하 수로를 만드니 수십길의 용소가 생겨나서 "용담"이라 불렀다고 한다.龍堂", "돌담", 용담리( 龍潭里)라고도 하는데 "돌담"은 용이 못(潭)을 돌았다는데서 나온 말이라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龍潭里(용담리)와 院堂里(원당리)를 병합하여 龍堂里로 하였다.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장의 생각, 주민들을 증언을 들은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금당지하에 있는 배수시설의 돌 2개 가운데 하나는 촉촉하고 하나는 말라 있다. 발굴때 수통은 자료처리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구멍은 용당의 물이 들어와 나간 (동입서출) 2개의 구멍으로추정할수 있다.
용당에서 수로를 따라 그 아래 용지가 있었다. 이견대에서 용을 맞이하고, 용은 용지에 머물다 절에 올라가 음복하는 것으로 그 옛날 사람들이 연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할수 있다.
주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용지로 추정되는 곳에 엄청나게 깊은 소(沼)가 있었다고 한다.명주고름 다 풀어도 안되는 깊이였다고 한다. 기도도 엄청 많이 하고, 용당에서 빌어 애 놓으면 이름에 해자,용자를 많이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사라예보 태풍으로 매몰됐고, 그후 2차선 도로를 만들고, 경지정리 하면서 다 매워졌다고 한다.
용지에서 용당까지 수로폭은 몇미터나 되고 물미역이 떠 다니고, 많은 사람이 낚시했고, 수로에서 헤엄치고 했다고도 전해온다.
용지를 더욱 파 들어가면 돌축대도 나올수 있을 것이고, 못흙, 뻘이 나올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발굴을 추진한 것이다.“

이들 단체 회원들은 한수원(주)이 시행하는 양북 어일리~봉길리 사이 지방도 929번 도로 4차선 확정공사로 매돌되면서 실존했던 용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며 지난해 12월말 한수원과 경주시에 오는 6월말까지 6개월간 공사중단을 요청했다.
자체적으로 발굴비용을 마련해 지난 3일 용지 추정지 현장에서 문화재전문가가 입회한 가운데 시굴조사를 벌여 유물을 다수 수습한 것이다.

김윤근 회장의 이어지는 말이다.
"집안 우물도 잘못 메우면 한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치욕을 겪은 것도 혹 용지를 메웠기 때문은 아닐까.
잃어버린 용지를 복원하고 수로를 찾아 내는 것은 나라의 기운을 다시 흥하게 하는 것일수도 있다.
1967년 1월1일자 신문을 보면 신라오악조사단의 활동을 전하면서 용지로 추정하는 곳에 용소로 표시해둔 자료도 있다.2003년 신라문화원에서 발간한 사진자료집에도 용지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난다.
못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을 해보는게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급한 마음에 4차선 도로 발주처인 한수원을 찾아가 딱 6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감은사와 용당, 용지, 문무대왕릉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리가 자비를 들여 발굴하고 증거를 찾겠다고 했다.그결과 작년 12월부터 오는 6월말까지 공사 중단을 허락 받았다.  본격적인 발굴을 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전문가 입회하에 우리가 시굴해서 용지가 있었다는 증거를 찾은 다음, 그 다음은 국가에서 발굴하게 하는것이 목표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4월3일 하루동안 우리 회원들이 호미들고 발굴해서 수습한 것이 12일 공개한 유물이다."

문무대왕 유적성역화 추진위원회등은 이날 공개한 각종 유물을 전문감정기관에 보내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고 빠른 시일내에 이 수로와 용지 등 문무대왕 호국룡이 드나드시던길 복원을 문화재 관계당국에 건의해 전면발굴을 추진 할 계획이다.

▲ 12일 용지 추정지 수습 유물을 설명하는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장

▲ 김윤근 회장이 그린 문무왕 유적지 성역화 및 관광자원화 구상도.
문무대왕유적성역화 추진위원회에는 신라종묘역사문화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원들이 다수 참가하고 있다. 회원들 대부분이 겹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단체들이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신라종묘역사문화관과 용지 복원을 통한 문무대왕 유적 성역화작업은 그 만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반증이다.
이들 단체가 구상하는 것은 용지와 수로를 복원한 다음 문무대왕릉과 이견대, 용지, 감은사 일대를 문무대왕 유적지로 성역화 하는 것이고, 그런다음 도심권에 세워질 신라종묘역사관과 연계해 경주의 기념비적인 문화역사, 관광자원을 만들자는 원대한 포부다. 

양 단체에 깊숙하게 참여하고 있는 김윤근 신라문화동인회장의  설명이다.
"신라 56왕을 대표하는 정신은 죽어 용이 되어서라도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던 문무왕의 호국정신(忠), 그 부모님의 은혜를 기려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고 했던 신문왕의 효(孝)의 정신이다.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신라역사문화관의 중심으로 삼자고 생각하던중에 용지에 관한 제보가 들어왔다. 우리가 한 시굴결과를 토대로 국가에서 발굴결과를 한뒤 이 일대 전체를 성역화한다면 세계적인 스토리 텔링이 되지 않을까? 죽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한 왕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6부촌장과 56왕을 모시시는 신라종묘역사문화관과 이 일대 문무왕 유적지를 성역화 한다면 세계적인 스토리 텔링을 보유한 관광지가 될 것이다.
경주시가 계획하고 있는, 문무왕 수중릉 일대 주변정비를 통한 성역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수중릉과 용지, 감은사지를 연결하는... 말 그대로 이 일대 전체를 성역화하는 큰 계획이 필요하다. 용지 복원, 이 일대 문무대왕 유적성역화는 충효정신을 오늘날 새롭게 되살리는 일이자, 경주 관광을 한단계 끌어 올리는 획기적인 일이 될 것이다."

▲ 발굴 유물을 공개하는 모습. 사진 가운데가 김은호 회장.
김은호 신라종묘역사문화관 건립추진위원회장은 12일 용지 유물 공개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무왕의 위대한 호국정신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문무왕의 유적지를 성역화하고 복원하려는 것은 경주관광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역사를 대표하는 정신적인 자산을 전세계에 자랑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의미도 있다. 시민운동, 국민운동으로 성역화를 추진해야 한다."
 
용지복원과 정부차원의 문화재 발굴, 문무대왕유적성역화는 이들의 바람대로 과연 이뤄질까? 
그 출발은 용지복원운동협의회등이 자비를 들여 발굴한 성과를 토대로 정부가 본발굴을 실시할지 여부에 달렸다.
본발굴 결과에 따라서 이들의 주장이 다소 과장되거나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반대로 자칫 역사속으로 사라질뻔 했던 용지를 되살리고, 이 일대 성역화 혹은 관광자원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진심어린 노력에 조응하는  문화재 당국, 특히 경주시의 적극적인 관심이 절실 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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