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들과 문화계는 왜 침묵하는가
교수들과 문화계는 왜 침묵하는가
  • 김영길
  • 승인 2011.10.16 07: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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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삶 인생 그리고 세상

 

58년생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32개월동안 군생활 한 기간을 제외하고는 50살이 넘도록 경주에서만 살았으니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열려있지는 않을 것이다.

직장생활도 했고, 조그만 사업도 해보고 잠시 정당에 몸담은 적도 있지만 어느 하나 내세울 만큼 성공한게 없다. 자식셋을 키울 동안 경제일선에서 쉰적이 없는 아내를 고생시키고 있다.

생각같아서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선지식을 찾아 헤매고 싶지만 현실에 얽매여 그럴 형편도 못된다. 뚜렷하게 큰 목표도 없다. 아담하고 소박하게 살아갈 작정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말이다.
-2011년 2월 발간한 자신의 두번째 에세이집 <상선약수, 과유불급>에서 필자가 쓴 자신의 소개 글 중에서-

2008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영면한 이삼한(李三漢.1942생.‘Daum’인터넷 검색 가능) 씨는 자칭 여래(如來)로 25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교화와 강연을 하였지만 단 한 사람의 신자도 얻지 못했다. 죽은 뒤에 겨우 몇 십명이 이름을 기억할 뿐이다.
이삼한 씨의 진리는 ‘있는 그대로 진실을 본다’였고 덕목은 ‘양심과 정의’였다. 나 또한 현재의 사실을 대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보수도 진보도 현실로 본다. 역사의 한 단면이며, 인류 진화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최양식 시장 발표의 간과할수 없는 진실
나는 최양식 시장이 배동에 한수원 본사 위치를 정했다는 발표에 대해 두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 다른 여하한 시비와 변수는 제쳐두고 우선 최시장의 기자회견은 분명히 ‘확정’이 아니라 ‘제안’, 혹은 ‘추천’이 맞다. 일부 신문에서 마치 확정된 듯이 논조나 기사를 쓰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거나 저의가 깔린 글이다.

해당 지자체장으로서 한수원과 정부에게 단순히 장소변경안을 제안하거나 추천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한수원에서는 비록 늦었지만 주민들간에 합의가 되면 불가능하지만은 아니라는 게 현재까지의 입장이다. 정부의 입장은 아예 없다. 없다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뜻이다. 정부에서는 한수원이 법에 따라 경주로 가면 그만이지 주민들끼리 왜 싸우느냐며 의아해 하고 있을 따름이다.

배동부지는 92년 일부 교수, 문화계의 반발로 취소된 곳 인근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현재 최시장이 제안한 부지는 바로 92년 무렵, KTX 역사 부지였다가 일부 교수들과 문화계의 극렬한 반대로 취소된 바로 옆이다.
나는 최시장의 발표 즉시 일부 교수들과 문화계에서 당연히 극렬한 반대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전혀 말이 없다. 어이가 없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KTX 역사는 안 되고 한수원 본사는 되는 이유를 도대체 납득할 수가 없다. KTX 역사는 겨우 3-4층 높이다. 한수원 본사는 이보다는 높아야 될 것이다. 최대한 낮게 지어야 현재 경주여중과 비슷할 것이다. 당시 화천 쪽 노선을 찬성했던 이들의 논리는 남산보호와 도초부근과 형산강 지하에 있다는 문화재였다. 그리고 성건동 일대에는 소음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고 동국대 병원에서는 전자파의 교란으로 임산부가 유산하거나 위암이 간암으로 되는 등 오진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었다. 소음도 오진도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다. 대표적인 교수가 K모 교수였다.

최시장이 추천한 그곳에 KTX 역사가 들어섰다면 우리 경주의 발전이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많다. 현재의 역사는 접근성 등 단점이 한 둘이 아니다. 도초나 배동에 역사가 들어섰다면 남산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시원스럽게 다니는 고속철이 얼마나 멋있을까. 야간에는 더욱 장관이리라. 울산역이나 포항역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포항노선이 개통되면 경주역사는 간이역 쯤으로 전락되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된다. 화천역사는 얼마나 불편한가. 그야말로 효과가 반감되고 있지 않은가.

최시장 배동 재배치 제안에 대해 발언해야
그런데 화천노선을 지지했던 문화계와 교수들은 아직까지 한 마디 사과의 말이 없다. 화천으로 역사를 이전한 데 대해 아직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지 아니면 부끄러워서 인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시 시민 대다수가 도초를 지지했으나 남산과 문화재 보호의 명분 때문에 화천으로 정해졌다. 경주역사인지 화천역사인지 모르겠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런데 또 다시 그 때 그 자리(도초보다 남산 쪽에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에 한수원 본사를 유치하겠다는 최시장의 발표에 대해 묵묵부답,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지 모를 일이다. 20세기에는 안되고 21세기에는 된다는 말인가. 당시 화천역사를 주장했던 인사들은 최시장의 한수원의 배동 재배치 제안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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