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이는 겨울 숲, 야생동물과 함께 하다.
다 보이는 겨울 숲, 야생동물과 함께 하다.
  • 경주포커스
  • 승인 2014.01.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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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경주 둘렛길 생태와 환경이야기 ⑥-문복산 구간

▲ 고라니 배설물.
열 번째 둘렛길 탐사를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햇빛이 밝게 눈동자 앞을 일렁이지만 칼바람은 겨울이라는 강한 인상을 전한다.
겨울바람과 함께할 일행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한다.
한참을 달려 숲으로 들어서기 전 딱딱하게 굳어 버린 지 꽤 시간이 지난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를 쓸어 오리는 대기의 찬 공기들이 그리 거부 감 일지는 않는다.
그저 함께 버물려져 있는 숲 길 사이를 의미 있는 이동을 하려한다. 

등 뒤로 아련했던 고헌산을 내 눈빛 끝으로 천천히 보내고 내 맘속 문복산을 향해 바쁘게 오르는 일행의 뒤를 따른다.
얼마의 발걸음을 옮겼을까...누군가 이게 뭐냐며 호기심으로 가득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의 호기심과 함께 내마음은 더욱 들뜬다. 바로 고라니의 배설물이다.

고라니라는 야생동물이 끊어진 숲 가장자리에서 똥이라는 유기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해 놓은 것이다. 고라니는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지는 우제목의 사슴과 가족들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과 야생동물의 삷 경계선에서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야생동물들 중의 하나이다.

▲ 눈위에 멧토끼 발자국이 선명했다.
▲ 족제비 발자국
12월도 눈위를, 1월도 눈위를.....학대산을 지난 문복산을 거쳐 걷고 있다.
이것은 겨울 숲에서 야생동물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는 것이다. 고라니의 똥을 발견하고 주변의 관목(땅속 뿌리에서 지상으로 여러 줄기가 올라오는 나무)들을 살펴보면 겨울눈들을 뜯어먹은 흔적이 보이고 영역표시인 손가락 굵기 만한 나무줄기에 가늘게 껍질들이 세로로 갈라져 너저분해 있는 모양새들이 보인다.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해 관찰해야 만이 볼 수 있는 고라니의 생태흔적들이다. 하지만 더욱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건 눈이 내려 쌓인 숲을 탐사하는 날 만나게 되는 야생동물들의 숨소리와도 같은 발자국들이다.

12월 고헌산에선 거의 만날 수 없었던 멧토끼 발자국과 족제비 발자국, 담비 발자국 들이 문복산을 거치면서 내 눈을 벗어나지 않고 흔적을 내비친다. 내 심장박동과 동화되어 마치 함께 엷은 숨을 쉬고 있는 걸 느낀다. 이들은 분명 존재하되 제 몸을 들어내어선 안 되는 것을 안다. 그래서 겨울 숲은 야생동물들에게 너무나 혹독하다. 특히 고라니에겐 더욱 그렇다. 먹이가 부족하고 행동반경이 인간들의 좀 더 나은 삶에 희생되어 좁아져 갈 곳이 없어지고 있다.

끊어진 길 사이에는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 있다. 바로 길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흔히 로드킬 이라 말한다. 둘렛길 탐사를 하면서 가장 매끄럽지 못한 부분도 끊어진 길을 이어 가는 것이다. 길은 우리가 끊어 놓았기에......

사전답사 때 산행대장님과 대표님은 시간에 쫓겨 서둘러 앞서 가며 나를 부른다. 간간히 큰소리로 답을 하며 온통 자료사진을 남기기 위함에 몰두한다. 그러는 찰나 숲은 적막으로 둘러싸인다. 고라니울음소리가 탁하게 들린다. 멀리서 들리기도 하며..... 오히려 이들이 우리를 먼저 살피고 있었을 터이다.

 
경주숲연구소 비록 겨울 숲은 나뭇잎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이 태양이 멀다하고 향했던 흔적들이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듯 하지만 눈 쌓인 겨울 숲에는 야생동물들과 공존해야함을 발자국으로 남긴다.

이제 겨울 숲은 다 보이는 숲이다. 곤충이 살았던 흔적, 새들이 둥지를 틀어던 흔적, 힘겹게 물을 끌어올려 포도당을 만들었던 나무의 살들인 낙엽들 그리고 온몸으로 추운 겨울을 버티고 있는 야생동물들, 그들의 발자국......다 보이는 겨울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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