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둘렛길 숲, 아직은 잠들어야 한다.
2월의 둘렛길 숲, 아직은 잠들어야 한다.
  • 경주포커스
  • 승인 2014.02.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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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경주 둘렛길 생태와 환경이야기 ⑦옹강산 구간

 
경주숲연구소 별탈없이 지날 갈 것만 같아 던 눈은 폭설로 이어졌고 한반도의 솟아오른 대부분의 산들이 하얗게 물들었다.

지난 15일 11차 둘렛길 탐사를 위해 집 앞의 문을 연 순간 너무나 밝은 햇빛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차갑게 간지럼을 태운다.
내 몸과 마음은 공간속을 가르고 어깨위로 둘러맨 배낭을 두 손으로 끌어올리며 눈 쌓인 숲길을 상상해 본다.

한 참을 달려 산내면 일부리 심원사에 도착했다. 10차 둘렛길 종점에서 만난 적 있는 백목련 겨울눈을 스쳐가려다 유심히 눈길을 돌렸다.

▲ 백목련의 가지 끝꽃눈과 잎눈
겨울눈은 아주 크고 온통 황백색의 긴 털로 덮혀있다. 누구든지 보는 순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함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가지 끝마다 달려 있는 털 복숭이 백목련의 겨울눈은 꽃눈이다. 목련과 꽃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꽃으로 알려져 있고 현생 최초의 꽃이 폈던 식물은 중생대 약 1억 4천만년 때 나타났다고 학자들은 전한다.
곤충은 약 4억 년 전에 나타났고 또한 약 6.500만 년 전 포유류는 조금씩 번성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가장 늦게 이 지구상에 출현한 우리들은 거만하기 그지없다.

2시간 내내 옹강산 정상을 향해 부지런히 올랐고 움직일 때와는 달리 멈춤으로 해서 추위는 온몸을 싸안는다. 정말이지 추위에 떤다는 것은 나약한 인간의 유전정보가 충실히 발현되는 것이다.

따스한 2월의 햇살이었지만 옹강산의 정상은 맨살을 내어 따뜻한 물 한 모금 마실 때조차 얼음장 같은 냉기가 느껴진다. 며칠 내내 쌓여 있는 눈은 발목을 더욱 깊숙이 끌어들였고 우리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능선에 쌓인 눈을 힘겹게 헤치고 전진하는데 온 정신이 집중해 있었다.

하지만 거만한 인간들을 비웃듯이 내 앞을 가로 막는 겨울눈(동아). 비목나무의 겨울눈이 조롱조롱 하늘 향해 두 팔을 벌리듯 자신감 있게 서 있다.

잎눈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동그랗게 서있는 꽃눈이 오히려 앙증맞음을 과시하는 듯하다. 비목나무의 겨울눈은 꽃샘추위가 다가올 3월이 되어도 피지 않는다. 물

론 4월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4월 또한 낮은 지대의 심어놓은 벚꽃이 필 때면 또 한 번의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지만 비목나무는 이미 적응 기간을 잘 버티어 왔다. 4월이 되어 완연한 봄을 느낄 때 비로소 자잘한 황록색 꽃을 피운다.
그러기 위해 아직은 겨울잠을 자야 한다.

▲ 비목나무의 꽃눈과 잎눈
겨울눈은 비늘조각(인편) 하나하나를 붙이는 진화를 해 왔고, 비늘조각은 숲덮개가 존재하지 않는 겨울 찬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며 자외선에 대해선 왁스층을 만든다. 또한 엽록소를 보호하는 안토시아닌을 만들어 붉게 보인다. 겨울눈(동아)은 꽃이 지면 즉시 만들어 지고 그때는 녹색으로 보인다. 양분을 만드는데 모든 녹색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어린 가지도 녹색이다. 녹색은 엽록소들의 일터이기에…

초록의 숲에선 봄부터 자장가를 불러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추운 겨울의 깊은 잠에 빠질수록 강건한 꽃을 피울 것을 알기에…

아직은 잠에서 깨어나지 말라며 자장가가 내 귓가에도 들리는 듯하다.

▲ 제11차 경주둘렛길 탐사. 500m 이상 고지대에서는 폭설로 발걸음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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