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둘레길 숲, 정리의 기술을 펼치다1
8월의 둘레길 숲, 정리의 기술을 펼치다1
  • 경주포커스
  • 승인 2014.08.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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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경주 둘렛길 생태와 환경이야기 <12> 할마당재~시티재

이 글은 8월23일 경주시 서면 도리 할마당재~ 안강읍 시티재까지, 제16차 둘렛길 탐사의 생태와 환경 이야기입니다.

▲ 이현정<경주 숲 연구소>
와~ 바람이 분다. 아침 바람이 슬쩍 불어 왔다. 행여나 간절히 원했다. 구름이 잔뜩 낀 채로 둘레길 걷기를 바라고 바래본다.
할마당재(서면 도리)에서 열여섯 번째의 둘레길 탐사가 시작됐다.
바람이 분다. 내 볼을 감싸 안 듯 재빨리 지나가지만 나뭇잎들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휘둘린다.
지난 집중호우의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인다. 숲은 습기로 가득 차 있고 녹음이 절정에 달했던 7월이 지나가면서 한 달 반 만에 우리는 둘레길 숲에 들어와 있다.

▲ 개암나무 열매

▲ 상처 입은 나뭇잎.
8월의 숲은 그야말로 상처투성이다. 개암나무의 어린열매도 아직은 녹색이 더 강한 시기인데 갈색으로 변한 생채기가 나 있고 7월에 싱그럽게 피어 떨어진 칡꽃도 8월의 아열대성 기후의 역습으로 어린 꽃봉오리들이 잔뜩 움츠려 곧 피려던 꽃잎이 비에 젖어 녹아내린다. 그러면 그 여리고 어린 반쯤 열린 꽃봉오리는 영영 피어나지 않는다. 물론 숲의 모든 꽃이 그렇다고 못을 박을 순 없다. 이 시기의 많은 꽃들이 그런 것을 보았다.

이렇게 둘레길 숲에서도 아열대성 스콜을 맞으며 숲은 작년과 같지 않다는 날카롭게 날이 선 내 눈빛이 힐끗힐끗 나뭇잎에게로 꽂힌다. 아직 애벌레들이 한 창 나뭇잎을 먹고 말아서 여기 저기 둥글게 말아있는 잎들이 많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물론 강한 주관성을 띠지만 경험상으로 올 8월의 둘레길 숲은 상처는 보이는데 상처를 낸 친구는 온데간데없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나뭇잎의 상처를 내는 애벌레가 없으면 누가 가장 힘들까? 이쯤 되면 짐작이 갈 것이다. 이들을 먹고 사는 새들이다. 애벌레가 없으면 아기새들에게 먹일 먹이가 없어지는 것이고 결국은 애벌레가 부족하면 아기새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살아남은 어미는 대체할 만한 먹이를 찾게 된다. 그것이 심어 기르는 과수원의 과일과 견과류 등등이 되며, 먹을 것이 부족한 것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균형이 깨어지면 인간에게 남는 상처는 클 것이다.

이제 나뭇잎이 입은 상처는 상처 입은 채로 마지막 남은 광합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을 기약하기 때문에 나무들은 아직 안간힘을 쓰고 있다. 7월에 이미 생리대사를 끝내는 종류의 나무도 있겠지만 8월에 생리대사를 마무리짓는 나무도 있기 때문에 힘을 내야 한다. 반면에 여름 풀꽃들은 이미 숲 땅에서의 정리 단계에 들어간 지 오래다. 5월의 둘레길 숲길에서 본 은방울꽃은 조롱조롱 은백색의 환한 알알이 구슬이 달리듯 자태를 뽐 낼 만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향기는 지나는 길목마다 짙은 화장을 하고 산에 오른 일상을 탈피한 주부의 즐거운 산행분위기를 느끼게 만들었던 그 꽃이다. 그랬던 은방울꽃은 꽃을 품었던 몸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곧 숲 땅에 바칠 몸이라며 작은 자기의 종자를 누구에게든 먹히기 해서 붉은 색 살로 감싸 안고 익어 갈 것이다. 비록 몇 안 남은 녹색의 열매지만.....

▲ 어림산정상 부근이 크게 상처를 입었다.

▲ 은방울꽃 열매
한 시간을 조금 넘기고 나타난 해님은 강한 빛으로 땀방울을 내 몸 구석구석 파고들게 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얼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어림산으로 오르는 산복부와 능선이 훤하게 들어나는 상처 입은 모습이 보인다. 간벌도 아닌 그저 베어진 참나무종류들이었다. 산불이 났을까? 이유가 어떠하든 참혹해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루터기에선 스스로 일어서려는 참나무의 어리디 어린 줄기들이 맹렬히 솟아오르고 있었다.

숲에서 여름풀꽃들의 녹색열매가 정리되어가고 나무들의 잎은 애벌레와 곤충들에게 먹힌 흔적을 훈장처럼 보이며 정리하고 있다. 마지막 하나 아직 힘껏 맹아지를 올려 키를 키우는 것이 목적인 어린 나무들의 자람. 이것은 줄기를 올려 자람으로 인해 숲 전체를 정리하는 것이다. 어서어서 자라 숲을 이뤄야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름동안 해내야 하는 가장 큰 정리의 목적인 것이다.
숲은 풀꽃에서부터 나무가 쓰러지기까지 차곡차곡 숲 땅에서 정리의 기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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