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입학도 시험? “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고교입학도 시험? “ 와 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
  • 신경진
  • 승인 2011.11.14 09:5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신경진, 홀로 더불어

경북 교육청이 2013년 고입생부터 고입시험을 실시하겠다는 정책방침을 지난 5월 30일에 발표한 바 있다. 바야흐로 대입 전쟁을 치르는 철을 맞아 이번에도 역시나 ‘수험생 투신 자살’이라는 인터넷 기사 제목을 보면서 경주지역에 사는 학부모 입장으로는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모양으로 이 정책 방침이 달갑지 않다.

경주지역은 고교 비평준화 지역이라 중학생들은 ‘초딩(초등학생)’ 티를 갓 벗고 난 뒤부터 부모와 보이지 않는 ‘성적올리기’ 실갱이를 겪는다. 고등학교가 성적 순으로 순위가 매겨져 있는데, 그러한 학교의 위상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배포 큰 ‘중딩(중학생)’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고등학교에 배정되고 나면 주변 친구들까지 성적이 나쁜 아이들끼리 모이는 곳에 가면 어쩌나...’ 부모는 부모대로 전전긍긍….

내키지 않지만 아이 성적을 올려서 좀 더 똘똘한 아이들과 어울리게 하려고 어느새 아이에게 잔소리꾼 엄마가 되어 있다. 부모의 불안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것이 된다. 아이들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성적이 좀 더 좋은 학교에 가서,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건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은지, 자기가 잘 하는 건 뭔지 궁금해 할 겨를도 없이 “00등” 짜리 아이로 불리어지고, 몇 등이라도 좀 더 등수를 올려 보려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전문계 고등학교는 성적 나쁜 아이들이나 가는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 되었다. 교복은 그렇게 아이들의 낙인이 되어 있다. 더 이상 부모들도, 교사들도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몇 등까지 올릴 수 있고, 어떤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지가 궁금해질 뿐이다.

그런데 이런 지경에다가 이미 사라져버린 구 시대의 변별방식인, 그렇지만 줄세우기엔 기가 막히게 편리한 ‘고입시험’을 치겠다니….
아이들의 중학교 생활이 또 다시 문제 풀고, 혼나고, 학원 다니고, 또 시험치고… 이렇게 반복되면서 ‘나’를 찾아야 할 시기에 ‘문제집에 머리 쳐박고(!)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하게 생겼다.
변별하기 위해서 치는 시험은 어쨌거나 난이도를 높여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어려운 것들을 살짝살짝 가미해야 거르는 맛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용~하다는 시험달인들을 찾아 비싼 과외로 자신의 시험 면역력을 높여 놓지 않으면 안된다. 학교 수업은잘 들어봐야 시험하고도 별 상관이 없고, 상위권 점수를 받는 데는 역시 잘 나가는 학원 강사들의 족집게 특강이 필요하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엄마로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우리 세대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다들 썩 넉넉지 않은 살림이라 지금처럼 사교육이 넘쳐나지 않았고, 형편이 어려워 대학교도 못가는 아이들이 많아 아예 똘똘한 녀석들이 상고, 공고로 지원해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일찌감치 취업하곤 했다.
그 때 고입시험은 어쩌면 성적이 좋으면서 전문계 고등학교를 들어가는 아이들의 자존심 같은 역할도 했고, 고등학교를 선택하면서 정말 진지하게 자신과 가족의 삶을 고민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아이들이 형편이 왠만하면 다 대학(교)에 진학하는 상황이다 보니 전문계 고교의 위상도 달라지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경북 전체에서 고입시험을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중학교 교육을 죽이고, 우리 아이들에게 긴 호흡이 필요한 자기 인생에 대한 성찰 시기를 빼앗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사교육이 부모의 능력이며 자식 사랑의 지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또 얼마나 시달리고, 혹은 미안해하면서 아이들과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야 할런지...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이 사실이다.

현대 사회처럼 소통과 창조성, 자율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고작 시험지 몇 장으로 아이들을 분류해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틀에 가두어 놓는다는 것은 제 각각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좋은 씨앗을 모아 놓고 자신의 고유한 꽃이 아니라 어른들이 원하는 정형화된 꽃이 되어라 하고 주문하고 길들이다가 정작 그 생명력을 죽이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어른들이 아무리 한 틀로 만들려 해도 아이들은 ‘자기 자신’일 뿐 다른 것은 될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직접 살아내고(함께 힘을 합쳐 문제해결 하면서) 만드는 것이 그들 세대의 일인데, 어떻게 20년-30년 전의 방식으로 아직도 깐충하게 줄세우고 잘난 놈들끼리 모아놓아야 국가(지역)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하는지 ‘경북 교육정책’ 입안자들의 발상이 괘심하기까지 하다.

큰 아이가 2014년에 고등학생이 된다. 아이에게 “반에서 중간 등수 안에도 못 들면 인문계 고등학교도 못 간다더라. 실업계 가면 사고치는 애들만 수두룩하다던데 성적 좀 올려라” 잔소리 하면서 상처주고 실갱이하는 시간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공연을 보고, 미래를 위해 대화하고 싶다.
 
스스로 공부할 줄 아는 아이(자신에게 필요한 시간관리와 미래 계획을 가진 아이)가 되려면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 오랜시간 얽매여서 짜여진 스케줄 대로 주입식으로 문제풀이에 몰두하는 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
아직 왜 공부해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내 목표가 뭔지도 모른는 갓 청소년이 된 아이들에게 “닥치고 문제나 열심히 풀어!”를 강요하는 고입시험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쓸데없는 시험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쏟아부을 건가!)

더 나아가서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경북의 교육, 경주의 교육이 고교 비평준화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은 ‘지역(지방 중소도시)’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들러리로 살기를 원하는 것이며, 소설 ‘파리대왕’에 나오는 ‘저급한 지도체제’ 속에서 함께 괴로워하더라도 누군가 강력한 권력만 쥐고 있으면 큰 위협으로부터 우리들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집단의식임을 알아야 한다. 지난 세대의 고루하고 저급한 집단의식이 아직도 일류고, 삼류고를 양산하고, 일류고 나오신 2%의 사회 지도층 엘리트들이 이류-삼류고 나온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함부로 대하도록 명분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존중받으면서 평등하게 살고 싶어하고 다양한 채로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어하고, 그런 한 사람 한사람이 다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적 시민으로 살아가는 21세기이다! 그런 21세기에 우리 아이들은 모두 인재다. 세상을 착하게 살아가고, 서로 돌볼 줄 알며,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줄 알고, 나의 행복만큼이나 다른 삶의 행복도 소중한 줄 알고 살아간다면, 모든 아이들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참 아름다운 인재(꽃)인 것이다.

 
․ 대구대학교 치료특수교육학과 졸업
․ 경북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 장애전담 '아이꿈터'어린이집 원장
․ 경주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 외래교수
․ 참교육학부모회 경주지회장
․ 경주시보육정책위원
․ 경주시립도서관 운영위원 경상도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더 이상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괴롭혀서는 안된다. 아이들도 한사람의 도민이고, 학부모도 도민이다. 신중하고 공개된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 없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중요한 정책을 임의대로 밀어붙이는 경상북도 교육정책 입안자들(교육감, 도의원, 교육위원 등)은 경상도 아이들과 학부모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한다.

도대체 와 그라노!
느그 또 와 그라노!
우쨌기나 자꾸 그라믄 혼 난다!!!
느그 맘대로 그카믄 가마이 안 있는다!!!

경주포커스 후원은 바르고 빠른 뉴스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