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언] 경주 영지석불좌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
[독자제언] 경주 영지석불좌상에 대한 새로운 생각
  • 경주포커스
  • 승인 2015.07.16 1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존 화불이 나타나는 가장 이른 시기 작례

▲ 김환대(포항일월향문화진흥원 상임이사)
역사도시 경주지역에는 알려진 유적지가 너무나 많고 수 많은 불상과 탑이 남아 있으나 잘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발품을 팔아 현장 답사에서 몇 번을 찾아보고 확인하면 새롭게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부분들이 보인다.

영지석불좌상은 경주에서 불국사역을 지나 울산방면으로 조금 가다보면 있는데 행정구역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1297-1번지에 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다소 손상을 많이 입어서인지 크게 경주지역 불상 가운데서도 주목받지 못한 작품으로 간단한 설명 이외에는 불상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현장에서 살펴보고 기존에 조사되거나 설명된 부분에서 재평가를 해본다.

이 불상을 설명하면서 불국사 석가탑에 얽힌 전설로 널려 알려진 영지 곁에 있어서인지 이사달이 몸을 던져 죽은 아사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는 설명이 대부분이다.

이 불상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있는 불상으로 불신(佛身)과 광배가 일석(一石)이다. 전체적으로 머리 부분은 심하게 닳아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고 광배 일부도 마멸이 심한 편이다. 건장한 신체와 허리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게 하는 촉지인(觸地印)으로 왼손은 왼쪽 무릎 위에 놓고 손바닥이 밖을 향하게 하였다. 팔각형의 연화대좌위에 결가부좌하여 있는데 석굴암 본존불과처럼 아주 잘 만들어진 작품이나 얼굴과 여러 부분들이 마멸이 심하여 작품에 비해 평가가 떨어진다, 조성시기도 8세기후반까지 올려 볼 수 있는 듯 하나 9세기 작품으로 다소 늦춰서 추정되고 있다.

▲ 영지석불좌상<김환대>
이 불상에서 가장 큰 특징은 많이들 놓치기 쉬운 부분이 바로 광배에 있는 화불(작은부처) 표현이다. 마멸이 심하여 화불로 본 사람들도 드물 것이며 현장에서 눈 여겨 보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광배 정상에 삼존화불과 신광 좌우에 나타나는 큰 화불 표현은 삼존 화불을 표현한 우리나라 불상 가운데 가장 빠른 시기로 추정되는 중요한 특징이다. 현장에서의 눈 여겨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이 불상은 경주남산 열암곡 석불좌상을 복원할 때도 복원 방안에 활용될 정도이나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영지석불 광배에 화불이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을 이제 현장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새롭게 보이지는 않을까?
발품을 팔면 문화유산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을 다시 느껴보는 순간으로, 가까이 있는 유적이라도 다시 찾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경주포커스 후원은 바르고 빠른 뉴스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