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힘?....경주시, 한수원에 자사고 보도자료 정정 요구 관철
갑의 힘?....경주시, 한수원에 자사고 보도자료 정정 요구 관철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5.09.22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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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득기자의 경주읽기] 경주시가 정정자료 배포 요구 이유

한수원 자사고 설립을 백지화하고 대안사업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21일자 한수원 보도자료에 대해 경주시가 반발 하면서 한수원이 22일 정정 보도자료를 내는 소동이 일었다.
사실관계가 다르게 적시된 것도 아닌 한수원 보도자료에 대해  경주시가 정정자료를 낼 것을 요구하고 한수원이 이를 수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양 기관의 기울어진 역학관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경주시는 갑, 한수원이 을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수원은 22일 오전 <한수원 자율형 사립고 대안사업 추진>이라는 제목의 정정 보도자료를 냈다.
전날인 21일 오후 6시50분께 배포한 <경주시-한수원, 자율현 사립고 대안사업 추진 합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일부 수정한 것이다. 
22일자  보도자료는 제목에서 21일자 <경주시-한수원>에서 <경주시>를 삭제하고, <추진합의>라는 표현에서는  '합의'를 삭제했다.
본문에서도 첫 번째 단락, <경주시장과 한국수력원자력(주) 사장은>이라는 표현에서 <경주시장>이라는 내용만 삭제했다. A4용지 1장 분량인 이 보도자료의 나머지 내용과 표현은 21일과 22일 것이 동일하다.<아래 사진 참조>

▲ 21일 오후 6시50분께 한수원이 낸 보도자료, 21일 오전 정정 보도자료에서는 경주시, 합의, 경주시장은 이라는 표현만 삭제했다. <사진 아래

▲ 22일 배포한 정정 보도자료.
정정을 통해 자율형사립고 설립이  무산 된 것은 맞지만,  대안사업을 추진하기로 경주시와 한수원이 '합의했다'는 점은 부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같은 정정보도 내용은 사실일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조석 한수원 사장은 21일 오전11시30분 경주지역 기자간담회에서  "대안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 했으며, 대안사업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경주시가 결정하거나, 필요하면 경주시와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대안사업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대안사업을 추진하는데는 합의했다는 설명이었다.

22일, 한수원 담당자나 경주시 관계자 모두 '사전협의 혹은 합의'를 부인 하지는 않았다.
한수원 이전사업팀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그 정도면 암묵적으로 합의했다고 보고, ‘합의’라는 표현을 보도자료에 썼다”고 말했다. 경주시 관계자 역시 “한수원과 대안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수원은 무엇때문에 경주시 요구를 받아 들여 자신들이 전날 냈던 보도자료를 정정했을까?
경주시의 '항의와 요구' 때문이었다.

경주시 공보담당관실 관계자는 “대안사업을 무엇으로 할지 결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사업 추진 합의’라는 표현의 언론 보도로 상당수 시민들은 마치 경주시가 대안사업의 내용까지 결정하거나 합의해준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어서 정정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부정확한 언론 보도를 막고, 시민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경주시와 합의’라는 용어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가 부정확 하다면 해당 언론에 대해 정확한 보도를 요구하는게 정상이지만 엉뚱하게도 한수원 탓을 한 셈이다. 결과적으로 한수원으로서는 정정할 내용이 없으면서도 경주시 항의에 밀려 ‘정정 보도자료’를 낸 것이 된다.

이런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경주시는 갑(甲), 한수원은 을(乙)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경주시와 한수원, 양기관 사이의 역학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한수원본사 사옥위치, 사택건설 등 과거 민감한 현안이 불거졌을 때 왕왕 있었던, 즉 맞든 틀리든 경주시가 요구하면 한수원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 들였던 것이 구조화된 측면이 있으며, 이번 일도 그런 역학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시가 타 기관 보도자료 정정 요구한 까닭은?

▲ 최양식 시장이 지난해 11월6일 기자회견을 열고 자사고 설립 약속이행을 촉구하는 모습. 최 시장은 전날 경주시를 방문한 산자부 관계자로부터 자사고 설립 불가라는 정부 동향을 전해 들은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주시가 타 기관의 보도자료에 대해 이례적으로 정정보도를 요구하면서까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일각에서는 한수원 자사고 설립이 최종 백지화 된데 대해 경주시로 향할 수 있는 시민들의 비판 및 책임론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경주시가 한수원에 대해 대안사업 추진가능성을 타진하거나, 협의했던 것 자체만으로도, 오래전부터 한수원학교 설립 백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 들였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 될수 있는데다, '합의'까지 했다면 시민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은채 한수원과 밀실협의를 진행한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경주시장과 합의'라는 표현을 삭제하나 정정을 요구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경주시 관계자는 "경주시와 관계되는 내용은 사전에 협의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시민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요청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실일까?
본지는 21일 오후 <한수원 자사고 최종 무산>이라는 제목의 첫 보도에서 “경주시나 지역정치권은 정부에 한수원 학교 설립을 적극 촉구 하는 대신 자사고 설립비용 787억원으로 대안사업을 확정짓는데 주력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보도했다.
본지 최초 보도가 나간뒤 1시간여 지난 21일 오후 7시15분쯤 일부보강 수정기사를 통해서는, 이날 오후 6시49분 한수원이 낸 보도자료 내용을 인용해 ‘경주시가 대안사업을 확정짓는데 주력한 근거'라고도 썼다. 그리고 22일 오전, 한수원은 정정보도자료를 냈다.

경주시가, 본지 보도내용과 비슷한 류의 시민사회 비판과 의혹을 잠재우기 위해 한수원에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는 엉터리 정정보도자료를 내달라고 요구한 것은 아닌지, 거듭 질문 할 수 뱎에 없는 것은 이같은 앞뒤 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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