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8월, '경주의 조선'을 찾아 떠난 시간여행... 양동마을과 서원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8월, '경주의 조선'을 찾아 떠난 시간여행... 양동마을과 서원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6.08.3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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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경주사랑역사문화탐방

▲ 서백당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신라문화원이 한국수력원자력(주) 의 후원을 받아 7월부터 매월 넷째 토요일마다 12개월 동안 진행하는 ‘한수원과 함께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8월 답사가 27일 한수원 임직원 가족 및 경주시민 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두 번째로 진행된 8월 탐방은 ‘신라속의 조선’ 을 찾아간 시간여행이었다.
한국역사마을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양동민속마을을 시작으로 옥산서원과 독락당, 동강서원, 운곡서원을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차례로 탐방했다.

연일 40도를 오르 내리던 무더위가 거짓말 처럼 한풀꺾인 8월27일, 하늘은 더없이 높고 맑았다. 어느새 바람도 가을내음이 가득했다. 

오전 9시.
신라문화원에서 참가자를 확인한뒤 대형 전세버스로 양동민속마을로 향했다.
이동하는 사이, 박주연 문화유산해설사는 선도산과 김유신 장군묘, 김동리 선생 소설 무녀도의 배경이 된 금장대 등 창문너머로  보이는 유적들을 바라보며 신라와 조선, 근대 경주이야기를 쉼없이 쏟아낸다.
‘경주는 신라만 있는게 아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듯이.

버스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주시내에서 동북방향으로 16㎞쯤 떨어진 양동마을, 조선시대 전통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마을이다.
2010년 7월31일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그 가치를 거듭 공인 받았다. 

▲ 양동민속마을 입구에서.

▲ 관가정 입구.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에 의해 형성됐고. 국보, 보물, 민속자료 등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마을 전체가 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 양동민속마을 전시관에서 마을의 형성내력과 주요 문화재들을 둘러본 뒤 마을입구에 도착하자, 마을의 뒷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 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물(勿)자형의 지세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짜기와 능선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포함하여 500여년의 전통의 향기를 품은 총 150여가구의 고가옥과 초가집들이 우거진 숲과 함께 펼쳐져 탐방객을 반겼다.

8월 탐방에서 방문하려 한 양동마을내 고택은 임진왜란전에 건축한 관가정, 향단, 무첨당, 서백당 등 4곳으로 정했으나 향단은 지나며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첫 번째 고택은 우재 손중돈 선생의 옛집 관가정(보물 제422호).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는데, 가운데의 마당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된 이고택은 조선 중기의 남부지방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로도 명성이 높다.

동방사현의 한분으로 꼽히는 회재 이언적 선생이 경상감사로 재직할 때 건축했다는 보물 제412호 향단을 지나 방문한 곳은 무첨당(보물 제411호).  회재 선생의 종가의 일부다.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별당)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건물이다.

▲ 무첨당
마지막으로 방문한 고택은 서백당(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
경주 손씨 큰 종가로 이 마을에서 시조가 된 양민공 손소(1433∼1484)가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집이다. 양민공의 아들 손중돈 선생과 외손인 이언적(1491∼1553)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종가다운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사랑채 뒷편 정원의 경치 역시 뛰어난데, 건물을 지은 수법과 배치 방법들이 독특하여 조선 전기의 옛 살림집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문화재청>

▲ 옥산서원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양동민속마을에서 2시간을 머무른 다음 이동한 곳은 옥산서원.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선생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때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서원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처음 세웠고, 그 다음해에 임금에게 ‘옥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서원앞 계곡 나무그늘에서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한뒤 서원 구석 구석을 살펴본다.

흰바탕에 힘차게 쓴 현재의 편액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쓴 것이라고 하고, 서원 정문 역락문을 지나 만나는 2층 누각 무변루의 편액은  한석봉의 글씨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필이 쓴 편액 2개를 한꺼번에 만나자 탐방 참가자들은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선생을 제사하는 체인묘를 돌아 공부하는 장소, 구인당에서는 대청에서 신라문화원에서 탐방객들을 위해 내놓은 차를 마시며 답사의 피곤을 씼었다.

▲ 독락당의 살문을 탐방객들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다음 탐방장소는 보물 제413호 독락당.
회재 이언적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정면 왼쪽은 맞배지붕 형태이지만, 오른쪽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의 특이한 모양이다.
계곡을 바라볼수 있는 사랑채 옥산정사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옥산정사로 향하는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살문을 만들었다.
계곡에 인접한 옥산정사, 그리고 살문은 우리나라 전통조경의 핵심요소인 차경(借京)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아름다운 계곡을 손하나 대지 않고 건물안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지혜와 여유는 탐방 참가자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독락당을 끝으로 옥산리를 빠져 나온 탐방은 강동면 유금리 동강서원으로 향했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114호 동강서원은 조선전기 문신 우재 손중돈(1463∼1529)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우재 손중돈 선생은 성종 20년(1489)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뒤 우참찬에 이르렀다. 중종 때에는 청렴결백한 관리로서 청백리에 선정된 인물이기도 하다.

▲ 손충호 어르신이 동강서원의 내력등을 설명하고 있다.
서원은 숙종 21년(1695) 에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5년과 1960년에 복원했다. 우재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숭덕사, 신문(神門), 순교당, 활원재, 유도문, 전사청, 서고, 포사, 협문 등이 있다.
동강서원은 지난4월부터 전각주변 토석담장 설치등 주변정비공사가 대부분 마무리 되어 있었다.

탐방단에게 월성손씨 문유사인 손충호 어르신(72)이 인근 안강읍내에서 일을 보다가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서원의 내력을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우재 손중돈 선생과 동강서원에 관한 책 수십권도 별도로 준비해서 탐방객에게 나눠 주었다.

탐방단이 동강서원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신문광고등을 통해 미리 파악하고서,  문중 어르신 대여섯분은 이날 오전내내 서원에서 일행을 기다렸다고 전했다.
참으로 죄송스럽고 민망한 일이었다.
탐방 간다고 기다려 달라거나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문중에서 기다리신다는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자랑스런 조상에 대해 하나라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싶은 후손들의 애틋한 마음을 예상하지 못했고, 헤아리지 못했던 것은 탐방주관 측의 잘못일 수밖에 없다.
돌아오는 내내, 어르신들의 애틋한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는 죄스러움과 미안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운곡서원 앞에서 설명을 듣는 모습.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천북면과 강동면의 경계에 위치한 운곡서원.
운곡서원은 고려공신 안동 권씨의 시조 태사 권행, 죽림 권산해, 귀봉 권덕린을 제향하는 곳이다. 조선 정조 9년(1785) 후손들이 이곳에 추원사(追遠祠)를 세우고 권산해·권덕린을 배향해 오다가 고종5년(1868)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리었다. 그 뒤 광무 7년(1903)에 단을 만들어 제향하다가 1976년 신라 밀곡사(密谷寺)터로 추정되는 곳에 안동권씨 문중에서 중건하였다. 본당 (정면5칸, 홑처마 팔작지붕)과 경덕사(정면5칸, 측면2칸, 겹처마, 맞배지붕)가 있다.

운곡서원은 은행나무가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사진은 지난해 은행이 노랗게 물들었을때의 장관.

운곡서원은 근래들어 은행나무 풍경이 경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며 핫 플레이스로 뜨는 곳이기도 하다.
운곡서원 앞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죽림 권산해의 후손인 권종락이, 단종 때의 권산해의 억울함을 달래주기 위해, 서울을 왕래할 때 순흥에 있는 큰 은행나무의 가지를 꺽어다 심은 것이라 전한다.
늦은 가을, 수령 350년 은행나무가 절경을 이룰 때 방문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무며, 경주의 조선을 향해 떠난 시간여행을 마무리 했다.

한수원과 함께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은 한수원 본사 경주시대를 맞아 경주시민들에게는 저렴한 비용으로 경주역사문화 탐방기회를 제공하고, 경주로 이전한 한수원 가족들에게는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면서 경주를 이해하고 동시에 탐방에 참가하는 경주시민들과 소통 기회를 넓혀 안정적인 경주정착을 위해 마련된 것으로 매월 넷째주 토요일에 진행한다.

9월에는 24일 신라의 진산 낭산 둘레길을 걷는다.
참가문의 신라문화원 774-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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