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 추정 고분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릉(假陵) 발견
경주 낭산 추정 고분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릉(假陵) 발견
  • 경주포커스
  • 승인 2017.02.09 17: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위한 무덤 축조하다 중된됫것 추정

경주 낭산 추정 고분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릉(假陵)이 발견됐다.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은 9일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내 폐왕릉지로 추정되는 고분지 유적을 발굴조사한 결과, 신라 왕릉 조영에 사용될 탱석,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 다량의 석재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 유적 전경
이 석재 주변으로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도로(너비 16~17m) 등과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 귀면와, 습부정정(習部井井),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명 명문기와 등 300여점의 중요 유물을 출토했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한 왕릉의 직경은 약 22m로 전경덕왕릉(765년)과 비슷한 규모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조사 결과 출토된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인 점, 후대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돼 사용 되었던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의 정황으로 볼 때, 당시 왕을 위하여 사전에 능침 조영을 준비하던 도중 어떠한 사유로 축조공사를 중단하고 왕릉을 설치하지 않았던 가릉(假陵) 석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추정 왕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 관청(습비부 관련)이나 특수한 건물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도로유구는 신라 왕경내 현재까지 발굴조사 된 다른 도로보다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설계된 것으로서 왕경의 남북대로와 동서대로의 너비가 약 16~17m 정도인 점으로 볼 때, 본 유적의 도로가 왕경의 방리구획에 의해 연결되거나 전황복사지 사역 혹은 왕릉 조영과 관련하여 대형의 미완성 석재를 이동하기 위한 특수 목적으로 가설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 가릉의 석재가 노출된 모습
이번에 발굴조사한 유적은 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이 발견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서 남쪽으로 약 135m 지점의 논 경작지로서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홍수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 신라왕릉과 관련된 석재유물(면석, 탱석 등)들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학계에서 신문왕릉, 성덕왕비인 소덕왕후, 효성왕비인 혜명부인, 민애왕릉 등의 폐왕릉지로 비정되거나, 의상의 탑돌이와 관련하여 황복사의 목탑지로 추정되고 있는 중요 유적지이다.

경주시는 유적의 훼손을 방지하고 폐왕릉지에 대한 향후 복원‧정비를 위해 이번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원측은 이 유적에 대해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 및 신라왕경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했다.

경주포커스 후원은 바르고 빠른 뉴스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