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포읍 출신 독립운동가 정래영 선생 공적비 제막
감포읍 출신 독립운동가 정래영 선생 공적비 제막
  • 편집팀
  • 승인 2017.08.1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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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제막식이 열렸다.

▲ 정래영 선생.
감포읍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죽교 정래영 선생 공적비 제막식’이 12일 감포읍 팔조리 현지에서 열렸다.

죽교 정래영 선생은 1899년 1월 19일 감포읍 팔조리 홍덕마을에서 출생하여 1919년 약관의 나이로 동지들을 규합해 서울에서 독립투쟁을 벌였고,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 조달에 힘쓰다 대구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건국사업에 매진했다.초대 읍의원으로 선출돼 지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다 1960년 4월 23일 향년 61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정부로부터 1963년 대통령 표창·1980년 건국포장·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번 공적비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후 57년 만에 선생의 차남 형화씨가 주선(周旋)하고, 도·시의원의 노력과 지역주민들의 요청으로 고향 팔조리에 세워졌다.

 독립운동가 정래영 선생은?

*출신지 경북 월성
*운동계열 군자금모집
*훈격(연도) 애국장 (90)
*공적내용
경상북도 월성(月城) 사람이다.
1920년 4월 송두환(宋斗煥)·김종철(金鍾喆)·최해규(崔海奎)·정동석(鄭東錫)·김봉규(金鳳奎) 등과 경북 제2유림단 의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의 군자금 모집을 하였으며, 일제 순사 갑비(甲斐)의 사살사건에 연루되어 일제 경찰에 피체되었다. 1924년 11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의 언도를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도 중국과 국내를 비밀리에 다니면서 계속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운동가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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