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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궁에 수세식 화장실...동궁과 월지 발굴조사에서 유구확인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6일 발굴성과 공개
김종득 기자  |  abc@gj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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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6  1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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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통일신라 왕궁 수세식 화장실> 국립경주문화재 연구소 연구원이 발굴현장에서 통일신라 수세식 화장실 유구를 설명하고 있다.
사적 제18호 동궁과 월지(옛 사적명 : 안압지)의 북동쪽 인접지역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때 조성된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확인됐다.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오물 배수 시설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지난 2007년부터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6일 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발굴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발굴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것은 수세식 화장실 유구가 확인된 위치는,  황룡사 역사문화관 주차장 도로 건너편 발굴현장으로, 2차선 도로와 동해남부선 철도가 지나는 곳 바로 아래 가장 자리다.

화장실 건물 내에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까지 함께 발굴됐다.  
화장실 유구는 초석건물지 내에 변기가 있고, 변기를 통해 나온 오물이 잘 배출되어 나갈 수 있도록 점차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시설(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시설)까지 갖춘 복합 변기형 석조물이 있는 구조였다.

변기형 석조 구조물은 양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을 수 앉는 판석형 석조물과 그 밑으로 오물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타원형 구멍이 뚫린 또 다른 석조물이 조합된 형태로 발굴됐는데, 연구소측은 구조상 변기형 석조물을 통해 내려간 오물이 하부의 암거로 배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종훈 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불국사에서 유사한 형태의 변기형 석조물이 확인된바 있지만, 그 용도를 두고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 화장실 유구룰 통해 그 석조물의 용도가 변기였던 것으로 확실히 드러났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측은 화장실 사용방식에 대해 “변기에 물을 흘려 오물을 제거하는 수세식으로 추정되며,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준비된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변기하부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화장실 유구가 확인된 지역을 상공에서 바라본 모습.
   
▲ 화장실 발굴당시의 모습. 오물이 빠져나가는 타원형 구멍이 뚫린 석조물위에 판석형 석조물이 놓여 있다.
   
▲ 발굴후 판석형 석조물을 돌려 놓으면 이같은 모양이 된다. 발굴당시 판석형 석조물이 위 사진처럼 반대방향으로 돌려 놓인 것은 아래쪽 타원형 구멍이 뚫린 석조물을 만든뒤 발판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연구소측은 추정했다. 

동궁과 월지 화장실 유구의 특징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최상위 계층의 화장실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급석재인 화강암을 가공하여 만든 변기시설과 ▲ 오물 제거에 수세식 방식이 사용된 점, ▲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 타일 기능의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깔아 마감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통일신라 왕궁에서 사용된 고급 화장실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변기시설만 발견(불국사, 8세기)되거나 화장실 유구(익산 왕궁리, 7세기 중엽)만 확인됐을 뿐, 화장실 건물과 변기시설 그리고 오물 배수시설이 이처럼 한꺼번에 발굴된 사례는 없었다. 이번 동궁과 월지에서 확인된 화장실 유구는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그 부속품들이 한자리에서 발견된 최초의 사례로,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연구소측은 강조했다.

   
▲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이 발굴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동궁에 세자가 살았다면 세자가 사용한 화장실 일수도 있고,그렇지 않으면 동궁 근무자가 사용했던 것일수도 있지만, 화장실 사용자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통해 건물의 배치등을 모두 확인해야 파악할수 있을 것”이라면서 “궁궐내에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활유적을 확인한 의미가 있으며, 주변 건물배치등을 통해 궁궐내 동선을 파악하는 등 앞으로 연구해야 과제를 많이 안겨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화장실 건물터는 두칸인데 한칸은 변기 등이 있는 화장실인 반면, 다른 한칸의 용도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덧붙엿다.

이번 발굴을 통해 발굴현장 동편에서 동궁과 월지의 출입문으로 추정되는 대형의 가구식 기단 건물지(터)가 확인되기도 했다.
건물지의 외곽을 따라 화강암재의 가구식 기단의 지대석과 계단시설이 2곳 남아있다. 인근의 도로(임해로)에 가로막혀 건물지 동서방향의 규모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상태였다.
연구소측은 남북 21.1m, 동서 9.8m(추정) 정도여서 전체의 규모를 얼추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될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동궁 내 생활과 관련된 창고시설과 물 마시는 우물을 확인했으며, 다양한 생활유물도 출토돼 신라왕궁의 일상생활에 대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됐다.

   
▲ 출토유물

동궁과 월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 문무왕 14년(674년)에 세워진 동궁과 주요 관청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처음 조사됐다. 당시 인공 연못, 섬, 동궁 관련 건물지 일부가 발굴됐으며, 3만 여점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학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07년 동궁과 월지 북동쪽 인접지역에 대한 발굴조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대형건물지군, 담장, 배수로, 우물 등 동궁 관련 시설을 꾸준히 확인하고 있으며, 2007년 이전에 출토된 것과 동일한 종류의 기와와 벽돌, 토기류 등의 유물들도 계속 출토하고 있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발굴을 통해 동궁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한 것은 가장 큰 의미가 있으며, 신라궁궐 영역이 어떻게 변화 발전하는가에 대한 단초를 제시한 측면도 의미가 있다”면서 “그러나 동해남부선 철로, 유적을 가로지르는 도로등의 존재로 인해 전체 동궁의 공간배치를 규명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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