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⑥삼성재벌총수는 구속되지 않는다!
[노동인권변호사 권영국의 경주살이] ⑥삼성재벌총수는 구속되지 않는다!
  • 권영국 시민기자
  • 승인 2018.02.0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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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오랜만에 상경하여 개헌 관련 국회토론회에 참석하던 중 휴대폰에 속보가 떴다.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형사13부, 재판장 정형식)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뇌물 등 사건에서 피고인 이재용을 집행유예로 석방한다는 기사였다. 순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판결이 가능한 것일까?

▲ 2017년 1월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을 때의 모습.

작년 이맘때쯤 변호사와 법학 교수들로 구성된 법률가 농성단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정경유착의 핵심인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결정에 항의해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이재용은 대통령과 비선실세에게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주고 삼성의 경영권 세습 지원을 청탁한 부패의 몸통이자 국회 위증과 범죄 부인으로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상당히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2주간 지속된 법률가들의 노숙농성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삼성재벌총수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신화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특검의 영장재청구로 이재용은 구속됐다. 삼성그룹의 후계자 이재용이 구속됨으로써 ‘법 위의 삼성’ 신화가 무너지는듯했다.

하지만 노숙농성을 해산한 날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난 5일,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이하 ‘항소심 재판부’)는 이재용에게 뇌물죄 등에 대해 징역 5년형을 선고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해 석방했다. 법률가들의 노숙농성을 무위로 돌려 버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성격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정경유착이 아니라 삼성재벌총수 후계자가 최고권력자에게 겁박을 당해 수동적으로 돈을 건넨 사건으로 규정했다. 정치권력 위에 존재하는 최고경제권력을 단순한 피해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 판사들만 삼성 경영권 승계를 몰랐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재용을 피해자로 둔갑시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해 꺼낸 카드는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포괄적 현안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 자체가 승계 작업을 위해 이루어졌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서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포괄적 현안인 경영권 승계 작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최순실의 조카인 장시호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2,800만원,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한 행위를 제3자 뇌물죄로 처벌하려면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하는데,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청탁의 대상이 없는데 무슨 부정한 청탁이 가능하겠느냐는 논리다.

이러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객관적인 증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자리를 보전한 후 경영 복귀의 가망이 사라지자 사망 이후를 대비하여 아들인 이재용으로의 신속한 경영권 승계 작업이 필요했던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가 각각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재용의 지배권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내용이 담겨있다. 같은 해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도 ‘이건희 유고의 장기화와 경영권 승계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의 당면과제는 이재용 체제의 안착이고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바탕으로 1심 재판부는 “금융감독기관의 전문가들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피고인 이재용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와 관련이 있다고 평가분석하고 있다”며 승계 작업의 존재를 인정했던 것이다. 이재용의 승계 작업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합병이 진행되던 2015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합병 목적이 경영권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며 국민연금공단에 불리한 합병비율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재판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에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대해 챙겨보라”고 지시했던 사실도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과 이재용과 독대하며 대화한 내용이 상세히 기재된 안종범 경제수석의 업무일지(일명 안종범 수첩)와 청와대 수석실이 작성하여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경영권 승계 관련 보고서의 증거능력을 모두 배척했다. “작성자가 승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정을 추론해 작성한 의견서”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보고서만으로 박 전 대통령이 삼성 승계 작업을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리고 “보고서만으로 삼성이 승계 작업을 추진했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은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다른 판결과도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법정에 나와 수첩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고 진술했고, 지난 해 12월 장시호 사건에서도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는 수첩에 기재된 내용과 사실관계가 일치하는 점을 들어 안종범 수첩에 대해 “안 전수석이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말을 기계적으로 적은 것”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동안 업무일지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온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배경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2심 판결과도 충돌한다. 문 전 장관 등의 1, 2심 판결문은 일관되게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인정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제일모직 주식의 합병가액에 대한 삼성물산 주식의 합병가액 비율이 낮게 산정될수록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합병 후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1대 삼성물산 0.35로 이재용에게 유리하게 결정됐고, 이 때문에 문 전 장관과 함께 기소된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재산상 이익을 취하게 하고, 국민연금의 이익을 상실하도록 했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이재용 항소심 재판부 판사들만이 삼성 경영권 승계를 몰랐다는 것이다. 참으로 민망하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형적으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형국이 아닌가? 남들은 다 알아도 나는 모르겠다는 이 억지스러운 법논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항소심 재판부는 유일하게 정유라의 승마지원으로 지급한 금전을 뇌물로 인정했는데 삼성이 여전히 말에 대한 소유 명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뇌물액을 72억원에서 36억원으로 반토막을 냈다. 이를 통해 이재용의 횡령금액을 50억원 미만인 36억원으로 낮추어주는 배려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에서 횡령액이 50억원 이상이 되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무기징역에 처하도록 정한 반면, 금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음을 고려해 집행유예가 가능하도록 횡령액을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알아서 금액까지 맞추어주니 얼마나 친절한 법원인가?

'법앞에 평등 원칙' 무너뜨린 판결

▲ 2017년 1월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이재용 삼성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결정에 항의해 노숙농성에 돌입했을때의 모습.

백번 양보하여 항소심 재판부가 최소로 인정한 뇌물공여・횡령액 36억원만을 놓고 보더라도 집행유예 선고는 노골적인 봐주기 판결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서는 3천만원~5천만원의 뇌물공여에 대해 징역 10개월~1년 6개월을, 1억원 이상의 뇌물 공여자에게는 2년 6개월 ~ 3년 6개월을 권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2년 방송통신위원회 국장에게 3,477만원의 뇌물공여로 기소된 아이티컨설팅 업체 대표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혐의를 부인했다는 이유였다. 2013년 울산지법에서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에게 9,100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납품업체 대표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의 상당부분이 한수원의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이고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정상을 참작했지만 실형이 선고된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 14일 수원지법에서는 삼성물산 자금 1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직원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약속했으나 소용없었다. 횡령액이 거액으로 죄질이 불량하다는 이유였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는 이들 사례보다 횡령금액은 월등히 많고 죄질 면에서 더 나쁘다. 이재용은 항소심 최후변론에서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던 제가 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하겠습니까”라며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에게는 이렇다 할 정상참작사유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이야말로 구치소를 나오는 그가 만면에 미소를 감출 수 없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사회적 신분에 따라 법 적용을 달리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양심과 법률에 따라 판결해야 할 판사가 스스로 ‘법 앞에 평등’ 원칙을 걷어차 버린 격이다. 만인 앞에 드러난 증거와 사실에도 불구하고 재벌총수 앞에 굴복한 법관의 모습이 보인다. ‘삼성재벌총수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신화가 다시 부활하는 것일까? 재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법의 적폐를 우리는 언제쯤 청산할 수 있을까?
 

▲ 권영국 변호사

필자 권영국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배고팠던 어린시절, 역경을 극복하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1981년 대학입학 후 사회에 대한 눈을 떴고, 야학에 참여해 공부한 노동법이 계기가 되어 방위산업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대가로 두차례 해고되고, 합쳐서 3년6개월의 옥살이를 했다. 출소후 복직투쟁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보안사 사찰 대상으로 취업이 제한된 처지에서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1999년 11월 제4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 민주노총 법률원 설립에 참여해 노동변호사가 됐다.민주노총 법률원장, 민변 노동위원장 등을 거치며 용산참사, 세월호 진상규명 등 국민들의 편에서 법정투쟁을 벌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경주에서 출마 했다 낙선했지만, 박근혜 전대통령 탄핵정국에서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을 맡아 싸웠다. 거리에서 무장경찰과 싸우면서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경주에 법률사무소를 열며 경주에 살기 시작했고,9월에는 경북노동인권센터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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