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읍성 동문 향일문 복원 상량식 열려
경주읍성 동문 향일문 복원 상량식 열려
  • 편집팀
  • 승인 2018.03.22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경주읍성 동문 복원 조감도
사적 제96호 경주읍성 동문인 향일문 상량식이 22일 경주읍성 복원 현장에서 열렸다.
고려시대 축성돼 조선시대를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경주읍성 복원의 일부로 향일문이 축조되고 있다.

상량문은 건물을 건립역사를 알 수 있게 상량 날짜를 쓰고, 아래 두줄에는 ‘응천상지삼광(應天上之三光), 비지상지오복(備地上之五福)’이라는 축문이 적혀 있다. 하늘에서는 해와 달, 별의 삼광이 감응해 주시고 땅에서는 오복이 구비되게 해 달라는 염원을 담았다.

상량글은 서영수 시인이 짓고 문동원 작가가 국한문 혼용으로 예서체로 썼다. 상량축원과 복원경위, 관계자 이름 등을 적었다.

향일문의 성문은 윗 부분을 둥글게 틀어 무지개 모양으로 한 홍예식으로 설치하고, 문루는 전면 3칸, 측면2칸 규모로 짓는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처마를 받치는 부재들이 새 날개 모양으로 빠져나오는 익공계 양식으로 꾸민다.

경주읍성 동문은 현재 성벽의 근본인 몸통을 이루는 체성과 성문을 에워싼 옹성이 완료됐으며, 올해 안으로 동문인 향일문과 체성 위에 올려지는 낮은 담장인 여장을 비롯해 경관조명과 주변정비를 마무리 할 계획이다.
상량식에 참석한 최양식 시장등은 경주읍성 복원을 통해 이 지역이 경주의 명소가 되길 기대했다.

▲ 상량식을 하는 모습.
경주읍성은 고려 현종 3년(1012)에 축성됐으며, 고려 우왕 4년(1378), 조선 태종~세조년간에 개축했다.
임진왜란 때 불타 허물어진 것을 인조 10년(1632)에 중수하고 성문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영조 22년(1746)에 다시 개축되었는데 당시 둘레가 약 2.3km로 성문으로는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신문이 있었다.
경주읍성안에는 지방통치의 중심지로 고려시대에는 동경유수관(東京留守館)이, 조선시대에는 경주부아(慶州府衙)가 있었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