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멋과 향수 -9- 경주의 소나무(3)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경주 남산의 소나무

2013-06-28     김희동 기자

천년의 신라왕조와 함께한 경주 남산. 신라인들은 골마다 절을 짓고 바위마다 불상을 만들었다.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남산 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남산은 보물 13점, 사적 12개소, 불상 1백3구, 탑 82기, 옛 절터 1백46개소, 왕릉 14기를 품고 있는 거대한 박물관입니다. 가는 곳마다 신라유적이 산재해 있는 곳이 남산이다.

그 가운데서도 남산의 소나무는 사시사철 변함없이 우리와 같이 호흡하며, 우직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대변되고 있다. 애국가 2절 ‘남산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소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여기에 나오는 남산과 소나무는 경주 남산과 소나무라는 이야기가 있다.

배리삼릉과 경애왕릉 둘러싸고 수만평의 소나무 숲에 오랜 세월로 크고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노송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경주의 명물로 또 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작품으로 재탄생 되고 있다.

배리삼릉과 경애왕릉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명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고 불리운다. 부드러운 곡선, 늙은 어미의 젖가슴 같은 배리삼릉은 사적 제219호로 1971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서쪽부터 신라 제5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이다. 세 왕이 무려 700여년 차이가 있는 데도 한곳에 모여 있어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배리삼릉가까이 경애왕릉이 있다.

경애왕(景哀王, 재위기간 924~927)은 신덕왕의 아들이며 경명왕의 동생이다. 경명왕이 죽은 뒤, 경명왕의 아들들이 나이가 어렸기에 대신 왕위를 이어받아 924년에 즉위했다. 그 무렵 신라는 재정적으로 몹시 가난한 상태였으며 국운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안개 가득 낀 소나무 숲에서 조용히 슬픔에 잠겨 있는 듯한 경애왕릉.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편에서 기록된다고 했든가. 927년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공해 경주을 함락시킨다. 견훤의 습격으로 자살을 강요받은 경애왕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솔거와 소나무

한국 역사에 처음 나오는 화가는 솔거(率去)이다. 그가 통일신라시대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그렸더니 참새가 날아와 머리를 부딪치고 죽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신라시대 유명한 화가인 솔거 선생의 소나무 벽화 ‘노송도(老松圖)’ 는 어떤 소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솔거는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삼국사기』에 따르면 선천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일찍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줄기는 비늘처럼 터져 주름지었고 가지와 잎이 얼기설기 서리어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들이 가끔 바라보고 날아들었다가 허둥거리다 떨어지곤 했다고 전한다.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단속사 유마상(維摩像)도 모두 솔거의 작품으로 전하며, 그의 그림은 세상에 전하여 신화(神畵)로 여겨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근거해 솔거가 단속사의 유마상을 그린 것이 맞다면, 경덕왕 때의 사람이 되므로 그가 그린 소나무에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다만 허황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의 사실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병우와 소나무’

경주의 소나무를 앵글에 담으며 전문적으로 소나무만 찍어온 배병우 사진작가 (63).

그가 찍은 경주 소나무 사진 한 장을 몇 년 전 영국의 팝가수인 엘톤 존이 런던 로열아카데미 사진시장에서 3만달러에 구입해 화제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소나무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배병우는 한국의 산과 바다, 소나무 등의 자연 풍경을 담아내는 작가로 특히 경주의 소나무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전국의 여러 소나무 가운데 경주 왕릉의 등이 굽은 소나무를 최고로 친다. 등이 굽고 키가 크지 않은 경주의 소나무 숲에 들어서면 삶의 그윽함과 역사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삼십 대 무렵부터 ‘한국의 미’는 무엇일까 진지한 질문을 던지던 그는 소나무에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소나무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과 닮아 있었다.

1984-5년부터 경주 소나무를 찍어온 그는 전국의 어떤 소나무보다 ‘경주 소나무’를 으뜸으로 친다. 목재로 쓰여 지는 평범한 나무와 달리 경주 왕릉의 소나무들은 영혼 상승의 매개체가 된다는 믿음에서이다.

‘혼 자수’ 작가 이용주와 소나무

이용주 작가(56)는 경주 삼릉을 무대로 만든 자수 ‘삼릉 솔숲의 빛’을 경주시에 기증해 그의 작품이 시청현관에 걸려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실크예술의 극치라고 알려진 혼(魂)자수 작품은 이용주 작가가 제자 14명과 함께 4개월에 걸쳐 완성했으며 가로세로 660x220cm 규모의 대작이다.

경주 남산 입구 삼릉 주변 소나무 숲에 투영되는 빛을 실크자수로 수놓은 작품이다. 비단 천위에 소나무의 거친 껍질과 나뭇가지와 솔잎의 질감과 숲에 내리는 빛내림까지 완벽하게 표현했다.

안쪽에서 걸어 나오며 한곳만 응시하면 천연비단실로 수 놓아져 있어 고유의 광택감으로 주변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빛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이며 유화 사진과 달리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또렷하게 작품의 전체를 볼 수 있다.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소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혼魂 자수’라는 분야를 개척한 세계적인 작가다. 손으로 수놓아 사실감의 극치를 넘어 인물의 정신세계까지 만져질 것 같은 자수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출생지인 서울을 떠나 지난해 7월 경주에 정착했다.

이용주 작가는 “혼이 담긴 경주에 와서 작업을 하지 않는 시간은 거르지 않고 걸었다”면서 “발밑에서 조상의 혼을 느끼고 계림과 반월성의 송림에서 정령을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소나무를 그림의 단골소재로 삼을 만큼 사랑했으며, 그림과 더불어 ‘소나무는 날씨가 춥다고 해서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는 ‘송한불개용(松寒不改容;)’을 단골 화제(畵題)로 채택할 만큼 소나무의 덕목을 높게 기렸다. 뭇 나무들이 가을을 맞아 색깔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끝내 모든 잎을 떨구는 겨울에도 늘 푸른 모습을 잃지 않는 소나무의 고고함을 숭상한 것이다. 조상들은 소나무의 절개와 선비가 갖춰야 할 지조의 덕목을 동일시할 만큼 지고지순한 ‘소나무 사랑’을 보여주었다.

이번 주말 솔숲을 천천히 걸으며 내게로 오는 솔향기를 맡으며 솔바람과 친구해보자. 스마트폰의 액정이 아니라 컴퓨터가 전해주는 무제한적인 정보에서 벗어나 몸으로 느낀 정보로 가득 채워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