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능과 탑, 불상의 도시 경주
[2018년 7월] 능과 탑, 불상의 도시 경주
  • 경주포커스
  • 승인 2018.07.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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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과 함께 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시즌Ⅱ

한수원과 함께 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시즌Ⅱ
[2018년 7월] 능과 탑, 불상의 도시 경주

원성왕릉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원성왕릉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8년 7월28일 한수원(주)이 후원하는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은 <능과 탑, 불상의 도시 경주>를 주제로, 경주원성왕릉(괘릉)을 출발, 불국사, 신라역사과학관, 국립경주박물관등에서 신라인들의 우수한 문화유산, 그속에 깃든 과학적인 가치들을 알아보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기록적인 폭염속에서 진행된 7월 답사였지만, 정원 40명을 가득 채운 가운데 뜨거운 날씨 만큼이나 뜨거운 열기속에서 진행됐다.

지난해 8월 시작한 경주사랑 역사문화탐방 시즌2는 이번 7월 탐방을 마지막으로 1년간 답사를 마무리 했다.
한수원(주)이 경주로 이전한 본사 직원들과 시민들이 문화유적 답사를 통한 만남을 통해 경주사회와의 화합과 협력을 적극 지원하고, 시민들에게는 사회공헌차원에서 수준 높은 문화재 답사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후원하는 이 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1인당 5000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경주의 문화유적을 모두 답사 할수 있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면서 전회 40명 정원을 모두 채우는 높은 인기속에 진행됐다.

특히 경주시민들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탐방에 참여함으로써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 답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음은 7월 역사문화탐방에서 만난 주요 문화유적.

원성왕릉
사적 제26호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 산17번지)

원성왕릉 돌사자상 앞에서 박주연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원성왕릉 돌사자상 앞에서 박주연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4각 석상이 놓였고 그 앞으로 약 80m 떨어진 지점부터 양 옆으로 돌사자 한쌍·문인석 한쌍·무인석 한쌍과 무덤을 표시해주는 화표석(華表石) 한쌍이 마주보고 서 있다. 이 석조물들의 조각수법은 매우 당당하고 치밀하여 신라 조각품 중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히고 있는데, 특히 힘이 넘치는 모습의 무인석은 서역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페르시아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성왕릉의 무덤제도는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둘레돌에 배치된 12지신상과 같은 세부적인 수법은 신라의 독창적인 것이다. 또한 각종 석물에서 보여지는 뛰어난 조각수법은 신라인의 예술적 경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2011년7월28일 경주괘릉에서 경주 원성왕릉으로 명칭이 변경됐다.<문화재청>

불국사
사적 제502호(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 등 (진현동) )

불국사에서.
불국사에서.

경주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문화재청>

신라역사과학관

1988년 한 개인의 소유물로 출발한 신라역사과학관은 유물의 일부만 남아 있는 과학문화재를 복원하여 그 제작원리를 탐구하여 모형으로 그 구조와 미의 원류를 분석 실험해 과학적 보존 방법을 보여주어 관심있는 교육현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1) 첨성대

첨성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신라때의 별자리 모양도 볼수 있다.

가로 6미터, 세로 3미터 정도의 크기로 신라시대의 서울인 서라벌의 모습을 그림으로 재현한 왕경도를 비롯하여 천정에는 신라시대의 별자리 모습을 나타내고 천문을 관측하였다고 전해지는 국보 제31호인 첨성대의 모형과 우주를 관측하던 당시의 모습 및 천문관계 자료와 그밖에 혼천의와 해시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첨성대에 대하여서는 천문대의 일종, 천문사상과 지식 또는 선덕 여왕을 상징하는 기념비적 건물, 불교의 영향을 받은 종교적인 제단, 도시계획의 기준점 등 다양한 해석이 있다.

첨성대에 사용된 석재 수는 1년을 나타내는 361개이며, 정상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석재가 놓여 있는데 각 면의 방향이 동서남북의 방위 기준이 되었다고도 한다. 그리고 네모난 창 아래위 12단은 12개월, 24절기를 나타낸 것이며, 총 28단은 별자리 수를 나타낸다고도 한다.

2) 지하 석굴암

국보 제 24호인 석굴암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1/5 ∼ 1/10 모형을 통하여 실험하고 설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일제시대 이래 수리공사에서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석굴암의 원형 복원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① 창건 역사

창건 당시에는 석불사(石佛寺)라고 불린 석굴암은〈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경덕왕 10년)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를,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774년 김대성이 죽자 신라 왕실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석굴암은 김대성 개인이 창건했다기보다는 신라 왕실의 염원에 의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3차(1913~15, 1917, 1920~23년)에 걸쳐 보수되면서 원래의 모습이 많이 손상되었다. 일본인들의 잘못된 보수는 1962~64년에 정부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수리되어 석굴의 구조 및 불상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건축학적인 면에서는 앞으로 문헌자료와 함께 중수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만 창건 당시의 석굴암 모습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석실의 구조

석굴암 본존불 내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 내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석굴암은 여러 개의 판석과 다듬은 돌로 역학적으로 축조한 인공석굴이라는 점에서 인도나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실의 가운데 높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본존불의 두광은 뒷벽에 연화무늬로 조각되어 있는데, 예배하는 사람이 전실의 중간쯤 와야 광배의 중앙에 부처의 머리가 놓이고 상의 크기나 몸체의 비례감이 알맞게 보이도록 하였다. 석굴암 내의 조각상들은 부처가 설법을 할 때 대동하는 여러 권속들로, 본존불상을 중심으로 보살상 • 천부상 • 제자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즉 석굴암의 불상은 여러 불 • 보살 • 천부상 등이 모여 하나의 작은 불국토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앞의 네모난 방은 인간 세계를 상징하고 연꽃 기둥을 지나 부처님이 계신 곳은 둥근 방으로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옛날 동양에서는 인간의 세계는 모가나고〔네모〕하늘은 둥글다〔원형〕고 생각하여 엽전에서 안쪽의 네모는 땅을, 밖의 둥근 것은 하늘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였다.

③ 조각상

- 본존불

석굴암 본존불은 그 조각의 종교성과 예술성에 있어서 우리 조상이 남긴 가장 탁월한 작품이며, 전 세계의 종교예술 사상 가장 탁월한 유산이다. 전실의 중앙에 서서 깊숙한 곳에 앉은 본존불을 예배할 때 연꽃으로 된 아름다운 두광은 더욱 본존불의 영광을 드러내고, 힘찬 수법으로 표현한 복선단판의 두광과 본존불 자신의 소박하고 장중한 모습은 신성한 조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두광을 불상에 직접 부착시키는 일반적 방식과는 달리 간격을 두고 멀리 배치하면서도 그 거리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 입체적인 조화감을 나타낼 수 있게 한 구성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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