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거장 박대성, 김생을 깨우다
수묵화 거장 박대성, 김생을 깨우다
  • 경주포커스
  • 승인 2011.08.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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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명필 김생 탄생 1300주년 ‘헌정전시’
▲ 작품을 설명하는 박대성 화백

‘80이 넘었는데도 글씨쓰기를 쉬지 않아 각체가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 ‘왕희지와 짝하여 신품제일(神品第一)이다.’ ‘그 획이 마치 삼만 근의 활을 당겨서 한발에 가히 수많은 군사를 쓰러뜨릴 것 같다.’

서예 성인 김생(金生. 711~790이후)에 대한 기록이다. 김생은 통일신라시대 글씨미학을 독자적인 조형성으로 정립해내 당시는 물론 고려, 조선에 걸친 우리 역사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김생이 탄생한지 올해로 1300주년을 맞았다. 중국의 왕희지와 비견되는 ‘해동(海東)의 서성(書聖)’으로 불렸지만 오늘날 김생의 존재는 전설 속 인물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의미 있는 전시가 열려 주목을 끈다. ‘2011경주세계문화엑스포’ 특별전시로 경주타워에서 10월 10일까지 열리는 ‘도를 듣다 聞道 - 김생과 박대성, 1300년의 대화’.

세계적인 수묵화의 거장 박대성 화백(66)이 김생과 정신적 예술적인 대화를 나누며 그 결과를 작품으로 표현해 그를 위한 ‘헌정전’을 마련했다. 김생 서예와 신라역사를 박대성화백이 우리시대 처음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서울을 떠나 경주에 안착한지 10년이 훨씬 넘도록 ‘신라’만을 그려온 박대성 화백은 정신뿐 아니라 태생이 ‘신라사람’이다. 경북 청도가 고향이니 그는 신라시대 행정 구역으로 보면 날 때부터 신라인이다.

신라 정신과 마음을 필묵으로 녹여냄으로서 국내는 물론 한중일 등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역사를 현실로 가장 잘 불러내는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 박대성화백이 신라를 재해석 해내는 붓끝은 그림 이전에 글씨로 단련됐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박대성 화백은 “우리문화사에서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통일신라시대의 김생서예와 그 미학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한국예술의 정체성과 신라의 정신을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시를 기획한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48)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한국서예 성인에 대한 박대성 화백의 ‘무한헌사’다. 1300년 시차를 두고 서예가가 아니라 화가가 김생을 만난다는 것은 우리시대 필묵문화의 새로운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또 “박대성 화백의 신라유물 그림과 김생 글씨가 주는 아름다움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도를 듣다’라는 타이틀처럼 김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들은 박대성 화백이 그의 신라유물 그림에 김생체로 쓴 글씨와 병치시킨 작품 등 10점으로 꾸며졌다.

‘장엄불국(莊嚴佛國)-순교 이차돈’, ‘원융무애(圓融無碍)-금강역사’, ‘진경희이(眞境希夷)-목탁과 다보탑 석가탑’, ‘현월(玄月)-분황사 달밤’, ‘지혜지사-무두불’ 등 모두 박 화백의 강렬하고 장쾌한 기상이 서려있는 서화 대작들이다. 전시장에는 김생 글씨 2,500여자를 집자한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 탁본도 걸려 있다.

전시가 열리는 경주타워는 신라의 삼보(三寶) 중 하나인 황룡사9층목탑(646~1238)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높이 82미터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건축물. 8세기 김생이 올랐을 법한 그 자리에서 박대성의 붓끝에서 되살아 난 김생을 만날 수 있다.
[경주문화엑스포 8월23일 제공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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