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④ 우체국소포 배달記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④ 우체국소포 배달記
  • 경주포커스
  • 승인 2022.01.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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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정임. 작가.경주우체국소포실장.

<연재>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 ④우체국소포 배달記

크기도 내용품도 제각각이지만 누군가의 사랑이, 또 누군가의 꿈이 저를 반겨줄 이를 찾아 삐뚤빼뚤 엉거주춤 줄을 서 있다. 이곳에 쌓인 소포는 평등하다.
크기도 내용품도 제각각이지만 누군가의 사랑이, 또 누군가의 꿈이 저를 반겨줄 이를 찾아 삐뚤빼뚤 엉거주춤 줄을 서 있다. 이곳에 쌓인 소포는 평등하다.

 

제각각 사연을 담은 소포들이 곰비임비 쌓여간다. 설 대목 밑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민간 택배종사자들의 파업 탓이 더 컸다.
뜻밖에 천덕꾸러기가 되어 택배사에서 외면당한 택배들이 우체국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평소와 다른 비상상황이라 나도 손을 보탠다.
작업장은 이미 뒤죽박죽이다. 정해진 자리는 형식일 뿐 그들의 자리는 계급도 서열도 없다.
꽁꽁 언 아이스박스 위에서 낯선 이름의 열대 과일이 열리는 이변이 일어나고 명작동화 전집에서 A++한우가 툭 튀어나오는 마법도 펼쳐진다.

크기도 내용품도 제각각이지만 누군가의 사랑이, 또 누군가의 꿈이 저를 반겨줄 이를 찾아 삐뚤빼뚤 엉거주춤 줄을 서 있다.
이곳에 쌓인 소포는 평등하다. 오픈 런(Open run)으로도 겨우 영접할 수 있다는 샤*가방도 시장에서 단돈 만원이면 살 수 있는 보세가방도 똑 같은 대접을 받는다. 존재의 의미가 다를 뿐 소중하기는 매 한가지다. 동서양의 조화가 여기 있고, 세대 간, 진영 간의 화합도 이곳에 있다. 세계가 이곳에서 이합집산하기도 한다. 우리의 손길이 더욱 분주해지는 이유다.

이곳은 거대한 플랫폼이다.
보내는 소포도 받는 소포도 주소를 잘못 적어 길을 잃은 소포조차도 이곳에서 제가 가야할 곳으로 떠난다. 마구잡이로 쌓인 물건들이 용케도 제 갈 곳을 찾는 데에는 숙달된 직원들의 손을 거쳐야 한다. 그 손길은 마음조차 스캔한다.

소포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품이 다른 것처럼 담긴 마음의 색깔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용품대신 마음을 읽는다. 지나치게 화려한 겉포장에는 따뜻함이 읽히지 않는다. 자식에게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박스의 크기가 작아도, 포장지가 남루하여도 꾹꾹 눌러 담은 사랑이 너무 크고 깊어 그 무게를 저울로는 가늠할 수 없다. 연인에게 보내는 선물은 겉포장만 봐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들키는 것이 사랑이라 했던가? 어느 구석에 쳐 박혀 있어도 연정의 짙은 향내가 묻어난다.

그와는 달리 명절 무렵에는 수취 거절될 소포들도 어김없이 눈에 뛴다. 정성보다는 얄팍한 사심, 약삭빠른 처세술이 박스 속에 숨겨져 있다가 저도 모르게 툭 불거져 나오고 만다. 그것이 아무리 단단하고 견고한 포장지로 속내를 감추었다 해도 그 위용에 기가 죽지는 않는다. 정의롭게 살고픈 나는 괜히 죄 없는 소포에 대고 눈을 흘긴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고픈 어떤 이의 간절함이 담겨있기에 함부로 할 수는 없다.

소포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품이 다른 것처럼 담긴 마음의 색깔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용품대신 마음을 읽는다.
소포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내용품이 다른 것처럼 담긴 마음의 색깔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용품대신 마음을 읽는다.

낯선 곳에서 동향을 만나면 절로 말문이 터지고 동질감이 생긴다. 그렇듯 동네별로 구분된 소포는 옹기종기 정다워 보인다. 먼 길 오느라 여독에 지쳤어도 삼삼오오 기댄 채 서로를 의지하며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집배원을 기다린다. 새로운 만남을 꿈꾸는 일은 설레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는 것은 기다림조차 행복한 일이다. 기다림은 상호작용이다. 서로를 기다릴 때만이 만남은 소중한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지쳤거나, 성미가 급하여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자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박스들을 보곤 이내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도 있지만 간절함은 그 무더기 속에서도 용케 자신을 찾아온 소포를 찾아내기도 한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저토록 간절하게 나의 꿈을 찾아 본 적이 있었던가 뒤돌아본다.

삶은 지난하였다. 채광이 되지 않는 캄캄한 방에서 습벽처럼 좌절했던 젊의 날, 보잘 것 없는 나의 이력은 매일 어딘가로 배달되었지만 마치 수취거절 된 소포처럼 다시 어둠속으로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낙인이 찍힌 내 삶은 도돌이표처럼 공전하였다.

내가 긴 어둠을 뚫고 나올 수 있었던 건 나의 존재를 알아주고 기다려 준 우체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숨어들었던 빈 방처럼 배송차량의 적재함은 켜켜이 어둠이 쌓여 두렵기도 하지만 꿈을 꾸기엔 충분하다. 소포는 태생부터 기다림이 전제하는 것이니 두려움조차 행복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자양분이다. 비록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해도 잠시 후엔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선물이 될 테니까.

어두운 차에서 내려 이륜차에 환승하고 덜컹이는 시골길을 달린다. 가끔은 영문도 모른 채 좌충우돌 부딪혀 깨지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배송차량의 적재함에 적재되는 순간 익 일 배달을 실현할 뿐이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무사히 가 닿기를 꿈꿀 뿐이다. 행복이, 사랑이 그렇게 전해지길 바랄뿐이다.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뜻밖의 소포가 되고 싶다.

 

글쓴이 : 조정임. 작가.경주우체국소포실장.

2013년4월부터 2014년5월까지 경주포커스에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연재.

2021년 10월부터 시즌2 매월 1회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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