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⑤거울앞에서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⑤거울앞에서
  • 경주포커스
  • 승인 2022.02.25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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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정임. 작가.경주우체국소포실장.

<연재>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 - ⑤거울 앞에서

거울 앞에 앉았다. 스킨을 듬뿍 적신 화장 솜으로 습관처럼 양 볼을 두드린다. 건조하던 피부가 촉촉해졌음을 확인하고 주저 없이 그 다음은 로션 병으로 손길이 옮겨간다. 왼손을 펴고 오른손으로 로션 병을 무자비하게 물구나무서기를 시킨다. 고개만 아래로 떨어뜨려도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은데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쟁여두었던 우유빛깔 로션을 내 손바닥 위에 흥건히 게워낸다. 적당한 수확이다 싶을 때 즈음 손뼉을 치듯 가볍게 양손을 마주치며 왼손의 그것을 오른 손과 공유한다. 협공으로 얻어 낸 전리품이기에 공정하게 배분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전부 손바닥의 몫은 아니다. 양 볼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끈적끈적한 로션이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그제야 정면으로 바라본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두 손으로 양 볼을 감싸고 마치 뭉크의 그림 「절규」의 주인공을 흉내라도 내듯 짧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볼을 감싸 쥔 두 손에 경련이 일었고 그것은 분명 그 옛날 뭉크가 느꼈을 그 공포감이 감도는 절규였다. 거울 속에 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래 된 사진첩에서 보았던 흑백사진처럼 핏기 없이 야윈 얼굴로 엄마가 나를 대신해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오십여 년 동안 엄마를 표절해 온 것이다. 수없이 엄마를 베껴먹었음에도 한 번도 표절시비에 휘말리지 않았다. 물론 저작권료를 낸 적도 없다.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 즈음 평생의 반려인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혼자되었다. 그나마 자식들은 막내를 제외하곤 제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다행이었지만 그 무렵 엄마의 막막했음은 밤마다 안방에서 들려오던 흐느낌으로 대충 상상이 되곤 했다.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보면 얼른 눈물을 훔치며 멋쩍어하시며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 했는데 어짜노? 어짜노?” 하셨다.

나는 엄마를 참 많이 닮았다. 유난히 눈물이 많고 감성적이면서도 고집이 세고 까다롭다. 누린내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싫어하는 식성과 동적인 운동보다 정적인 독서나 뜨개질로 시간을 보내는 습성도 닮았다. 얇은 입술과 숱이 없어 옅은 눈썹, 새끼손가락 단지증 같은 닮고 싶지 않은 외모조차 엄마를 쏙 빼닮았다. 자석의 같은 극이 척력으로 서로를 밀어내듯 유난히 엄마를 닮은 나는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 조차 싫었고 까다로운 성격은 서로에게 날을 세우며 사사건건 부딪혔다.

엄마 역시 매사에 나를 못마땅해 했다. 서로를 닮은 모습이 너무 애틋하여 또 서로를 할퀴곤 했다. 그것으로 나는 엄마를 표절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었다.

얼굴을 감싸 쥐었던 손을 내려놓고 다시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본다. 엄마 앞에 마냥 어린애였던 나는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백발이 성성하고 젊음의 상징인 여드름을 더 걱정하던 팽팽했던 얼굴에는 세월이 지나간 흔적이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 놓았다. 때론 분노했고 때론 고뇌했으며 때론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흘린 자국들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남아 있는 것이다. 엄마를 닮은 나를 스스로도 싫어했지만 정작 나는 엄마를 흉내 내며 엄마처럼 그렇게 내 피붙이를 끔찍이 사랑하고 매사에 지나친 애살 때문에 스스로 상처받기 일쑤였던 내 얼굴에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리라.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딸이 언젠가 내 앞에서 “ 난 엄마의 안 좋은 것만 닮았어” 하며 투덜거리며 하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를 표절했고 딸은 또 그렇게 나를 표절하고 있었다.

입 꼬리를 위로 올리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거울 속에는 엄마가 희미하게 웃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유년, 칭칭시하 고된 시집살이, 일찍 사별하고 자식들을 홀로 키워내느라 억척스런 아줌마로 평생 고생만 하고 살았던 찌든 삶을 담은 엄마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지는 것은 나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얼굴은 삶의 이력서다. 누구나 화려하고 자랑스러운 이력만 적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은 행간의 뜻을 대번에 알아챈다. 언젠가 내 딸도 나처럼 거울 앞에 앉아서 자기 얼굴에서 나를 보게 되리라. 그때 엄마를 표절한 그 얼굴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베낀 엄마의 얼굴이 더욱 곱고 평온하게 보일 수 있도록 나는 거울 앞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꼼꼼히 화장을 한다. 마음 깊은 곳까지 촉촉이 스며들도록 분첩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린다. 내 얼굴을 베낀 딸의 고운 피부 결을 어루만지듯 정성을 다한다. 기초화장이 끝나면 부족한 곳을 보완한다. 옅은 눈썹에 검정을 더하고 각질로 마른 입술에 빨강을 덧칠한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나누면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여 하루를 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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