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⑨우리가 잃고 사는 것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⑨우리가 잃고 사는 것
  • 경주포커스
  • 승인 2022.10.0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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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임. 작가. 경주우체국 소포실장

빨간우체통 세상으로 보내는 편지 Ⅱ-⑨우리가 잃고 사는 것

조정임 <작가. 경주우체국 소포실장>

우리가 잃고 사는 것

“그게 도대체 얼마짜린 줄 알아? 당장 물어내놔. 변상하란 말이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겪이다. 누구의 잘못이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막무가내로 화풀이를 한다. 화가 풀릴 때까지 삿대질에 거친 욕설까지 퍼부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마침내 요약된 한구절로 협상을 제안한다. 그때까지의 행동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한 쇼에 불과한 것일까? 업무의 처리 과정인 걸까? 아무튼 대부분의 강성 민원은 루틴이 거의 비슷하다.

행방이 묘연했다. 이곳에선 분명 떠난 것 같은데 그곳에는 도착하지 않았다. 물류센터 두 곳을 거쳐가는 멀고 먼 여정이라 어디쯤에서 사라진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나쁜 손을 탄 것일까? 컨베이어를 놀이기구처럼 타고 돌다가 어디 으슥한 곳에 툭 떨어져 쳐 박혀 있는 것은 아닐까? 행선지를 잘못 찾아 오배달 된 것을 물색없는 사람이 웬 떡이냐고 넙죽 받아버린 것은 아닐까?

아니면 소포박스에 발이 달려 제 발로 잠적이라도 한 것이란 말인가? 이렇게 종적이 묘연한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 온갖 상상력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불문곡직하고 그것은 분실되었다.
 

사진은 원고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은 원고 내용과 무관합니다.

남의 소중한 물건을 잃어 버렸으니 입이 열 개라고 할 말은 없다. 금전적으로 보상이 가능한 것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가끔은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물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이 탯줄이나 부모님의 유품 같은 것이 분실되었을 때는 난처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렇지만 흔한 일은 아니라 30여년을 일하면서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더구나 바코드에 집약된 정보는 그의 동선을 감추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가끔은 분실되기도 하고 그 종적을 찾아 헤매어도 행방을 알지 못할 때도 있다. 결국은 고객과 손해배상을 논해야 하고 때론 얼굴을 붉히며 언쟁을 하기도 한다.

실컷 분풀이를 하고 난 후 고객이 제안한 협상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사과 한 박스 가격이 20만원 이란다. 요즘 물가가 아무리 천정부지로 올랐다고는 하나 사과 한 박스가 20만 원이란 고객의 말은 상식적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지만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일수도 있으니 절차대로 구입한 영수증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자 더욱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느냐며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운운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나 역시 물러 설수가 없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양이 아니라면 영수증을 제출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누르며 영수증을 받으러 가기 어려우면 구입처를 알려주면 대신 가겠다고 말씀드리니 그때부터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그날 그 고객이 똑같은 두 개의 박스를 보냈다는 걸 기억해낸 직원 덕분에 일은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중략하고 결론을 말하자면 사과 가격은 오만 원이었고 우편요금 포함 오만 팔천 원을 손해배상 했다.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부당한 요구를 하던 그는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나자 사과의 말도 한마디 없이 꽁무니를 감추며 줄행랑을 쳤다.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이 더해진 가격임을 인정한다 해도 그런 사람들과 실랑이를 하고나면 나는 인간의 사악한 본성 앞에 염증을 느끼곤 한다.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그 상실감을 가격으로 환산해보기도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잃어버리고 없어진 물건에는 실제 가격보다 높은 가격 요구한다. 그 정도의 추가된 금액으로 큰 부를 누리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부풀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아주 작은 욕심 때문에 정작 자신의 양심은 제대로 된 값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걸 잊고 사는 것 같다. 내 양심의 가격은 얼마일까? 또 잃어버린 그 사람의 양심의 가격은 또 얼마일까? 어쩌면 잃어버린 것은 자신의 양심이 아닐까?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머리를 싸매고 풀어보려 해도 풀리지 않는 난제, 숙제다.

어떤 이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려다 나는 나의 하루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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