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차 경계탐사] 기록 -경주와 청도를 오가던 옛길 고갯마루 2개를 만나는 시경계
[제15차 경계탐사] 기록 -경주와 청도를 오가던 옛길 고갯마루 2개를 만나는 시경계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4.03.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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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차 탐사구간.
제15차 탐사구간.

◎ 제 15차 탐사기록
일 시 : 3월16일 오전9시59분~오후 3시51분
코 스 :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 심원사~심원령(삼계리재)~옹강산~오릇골재(옛고개)~일부리경로당(일부2리 심천마을)
참가인원 : 33명
이동거리 : 7.5㎞ (시경계 3.7㎞, 비경계이동 3.8㎞. 등산어플 리 라이브 기준)
소요시간 : 총 5시간52분 ▲이동 4시간24분 ▲휴식 1시간28분
날 씨 : 맑음

빨간색 실선은 시경계. 파란색 실선은 비경계 이동구간.
빨간색 실선은 시경계. 파란색 실선은 비경계 이동구간.
15차 탐사 개요도.
15차 탐사 개요도.

◎ 시간대별 탐사경로요약
09:59 산내면 일부리 심원사 출발. 심원령까지 10~20% 오르막 임도, 편안한 길. 해발 258m~479m 완만
10:55 심원령(삼계리재)도착. 출발지 1.8㎞이동지점. 경사도 35%~50% 가파른 오르막. 직전 400미터 정도는 5~15% 정도 완만
12:11 옹강산 정상 도착. 3㎞이동지점
13:00 옹강산 정상 출발 3.3㎞지점에서 100m거리, -60%~-40% 급경사 구간.
14:40 품넓은 소나무. 5.2㎞이동지점
15:06 오릇골재. 5.5㎞ 이동지점  –10~-20% 완만한 경사. 5.4㎞ 뾰족봉. 오롯재에서 6.4㎞ 지점 계곡 나올때까지 –20~-30% 경사 옛길
15:46 일부2리 뒤쪽 도착. 산길 벗어남. 7.1㎞지점
15:51 일부리 경로당. 심천마을 버스정류장. 7.5㎞이동지점.

도착지 상공에서 바라본 지형도.
도착지 상공에서 바라본 지형도.

제15차 경주시경계탐사는 경주와 청도를 연결했던 옛길의 고갯마루 2개를 만나는 구간이었다.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와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삼계리를 오가던 최단거리 옛길의 고갯마루 심원령(삼계리재)을 지나 해발고도 831.7m 옹강산에 오른 뒤, 다시 능선길을 따라 걷다 오릇골재를 만닜다. 
다시 그 고개에서 산내면 일부리쪽으로 난 꼬불꼬불 옛길을 따라 내려와 일부리 경로당에서 끝나는 여정이었다.

버스가 갈수 있는 마지막 지점, 신라천년 고찰 심원사에서 경주시-청도군 경계에 있는 심원령까지 1.8㎞ 거리를 이동한 다음, 시 경계를 따라 옹강산을 오르고 오릇골재까지 3.7㎞를 이동한 뒤, 그 시경계 오릇골재에서 산내면 일부2리 심천마을까지 약2㎞ 거리를 이동했다.
실제 시경계 이동거리는 3.7㎞였다.
타고 간 버스에서 내려 시경계에 다가 서고, 또 시경계를 벗어나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위해서 이동한 비경계구간은 3.8㎞를 걸었다.

심원사 주차장에서 호흠을 가다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심원사 주차장에서 호흠을 가다듬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본격적인 탐사 시작점, 심원사에서 심원령까지 1.8㎞ 거리는 오르막 경사라고 해봤자 10%~20%에 불과했다.
옹강산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기전 위밍업 하기에 안성마춤이었다.

심원사에서 심원령까지 산길은 사찰소유다.<아래 사진①>
산에서 나오는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만든 임도가 나있다.
거세 빗물로 도로 중간 더러 패이고 끊어지기도 했지만, 10년전 계곡을 따라 걷던 데 비하면 매우 수월한 길이었다.

심원령은 경주와 청도를 오가던 경주의 가장 남쪽에 있던 길에 있는 고갯마루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법정리인 삼계리에서 시작된 고개라고 해서 청도군에서는 삼계리라고 부른다.

청도군 삼계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배내미골, 생금비리골, 계살피골 세 계곡으로 이뤄져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문복산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만들어낸 계살피골, 운문령 산지에서 발원하는 소하천이 만든 생금비리골, 가지산 동쪽 능선의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만든 배내미골로 이뤄진 계곡인데, 신원천의 지류 하천에 속한다고 한다

경주에서 산내면 대현리를 지나 울주군쪽으로 넘어가는 921번 지방도는 청도군 운문면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을 연결하는 국가지원 지방도 69호선과 만난다. 그곳에서 울주군 상북면으로 계속 갈수도 있고, 청도쪽으로 갈수도 있는데, 청도방향으로 나 있는 국가지원 지방도 69호선을따라 난 계속이 생금비리골이다.

그 고갯마루의 이름을 요즘은 삼계리재라고 부른다.
청도산악회가 그곳에 세운 이정목에서도 삼계리재로 표기해두고 있다.<사진 ③>

1919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지형도에서는 심원령(深原嶺)으로 표기 되어 있고 심원현(深原峴)으로도 썼다고 한다.
이처럼 심원령이라는 이름보다는 삼계리로 고갯마루 이름이 굳어진 것은 아마도 경주쪽 심원사에서 문복산이나 옹강산을 오르는 등산객보다, 청도군 삼계리쪽에서 오르내리는 등산객이 더 많아 지면서 자연스럽게 삼계리재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계리재에서 약3㎞거리인 청도군 삼계리쪽에는 자동차캠핑장도 있고, 여름철에는 피서객으로 북적일 정도로 개발이 많이 진행됐다.
교통도 그쪽이 훨씬 편리하다.
자연스럽게 청도방면에서 이용하는 등산객이 훨씬 많아지면서 경주쪽에서 부르던 심원령 보다는 청도쪽에서 부르는 삼계리로 더 많이 쓰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경주쪽 입장에서는 엄연히 고유명 심원령이 있는 만큼 심원령으로 부르는게 맞을 것 같다.

이 심원령은 신라 진흥왕(24대.재위 540년~576년) 때 운문면에 창건한 오갑사(五岬寺)의 하나인 가슬갑사(嘉瑟岬寺)와 경주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연결하는 고개이자 신라의 화랑들이 청도로 수련하기 위해 이동하던 주된 교통로였다고 전한다.

삼계리 아래쪽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의 중심지에 염창마을이 있는데 염창은 신라의 화랑 또는 승려의 부식물(해산물)을 저장 보관하던 곳에서 이름이 유래한다고 한다. 
삼계리에는 있는 가슬갑사는  원광 국사가 화랑에게 정신 교육을 절이었다.
청도쪽에서 운문천의 지류인 신원천을 거슬러 올라 삼계리에서 북동쪽으로 가장 짧은 계곡을 택하여 오르던 고갯길이 심원령이었던 것이다.

그 길은 누가 뭐래도 화랑의 길이었다.
경주에서 청도로, 혹은 청도에서 경주로 연결하는 가장 짧고 가장 낮은 고갯길, 그 고갯길을 걸으며 옛 화랑들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은 어떨까?

경주와 청도지역 교육지원청 관계자들이 이 길을 화랑의 길로 만들어  탐방하는 길로 만든다면, 책속에서 보는 화랑의 역사를 좀더 현실감 있게 되살리는, 그래서 살아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길이었다. 

15차 탐사길에 심원령에서 한숨을 돌리며 휴식하는 동안 기자는 심원령(삼계리재) 이정목 아래에 묻힌 조선시대 화폐 상평통보를 하나 발견했다. <사진④>
경주에서 청도로 가던 선비가, 혹은 청도에서 경주로 향하던 장돌뱅이가 가쁜 숨 가라 앉히려 잠시 쉬다가 저도 모르게 흘렸을지도 모를 일. 그 선비의 그 잘장돌뱅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상평통보는 1633년(인조 11) 처음 만들어졌으나 제대로 유통되지 않아 중단되었다가 1678년(숙종 4) 다시 주조된 동전(또는 엽전)이다. 처음에는 서울과 평안도 일대에서 유통되었으나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조선 말까지 통용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화폐 제도가 바뀌면서 발행이 중단되었는데, 사람들은 이후에도 상평통보를 사용했다. 그러다 1905년에 탁지부에 고문으로 파견된 일본인의 주도로 화폐 정리 사업이 진행되면서 상평통보는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됐었다고 전한다.

개화기 서양인 신부가 미화 100달러를 엽전으로 환전했더니 소달구지 2대 분량이 됐을 만큼 당시 양쪽 환율차가 컸다는 둥,  인플레이션이 심했다는 등 그 엽전하나로 이야기 꽃이 만발했다.
옛길을 오가던 사람들, 그들의 생활상을 상상하는 것은 경주시경계탐사가 주는 큰 즐거움의 하나다.

그 심원령 아래에 있는 심원사는 진흥왕 보다 한참 하대인 신라 제37대 선덕왕(재위 780년~785년) 2년, 781년에 세운 것으로 전한다.
삼계리는 초기에는 세개의 계곡이 합쳐진다는 의미로로 불렀겠지만, 적어도 심원사가 건립된 이후에는 경주사람들은 심원령으로 이름을 불렀을 것으로 추정할수 있다.
그 아래 심원리라는 마을도 있었으나 그 마을은 한국전쟁전에 사라졌다(폐촌)고 전한다.

경주에서 청도로 넘어가는 고개는 모두 6개가 있었다고 한다.
경주풍물지리지에 따르면 청도군 운문면과 경주시 산내면을 잇는 고개는 내칠리에 쉴고개, 대현리에 삼거리곡, 우라리에 비지재, 일부리에 삼거릿재(심원재, 심원령), 오릇골재가 있다.
오릇골재는 ‘지푸내’에서 청도군 운문면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지푸내’는 심천(深川)의 순우리말이다.
심원령은 경주와 청도를 연결하는 6개의 고개 가운데 가장 낮고 쉬운길로 보인다.

해발 고도 460m 심원령에서 해발고도 831.7m 옹강산 정상까지는 약 1.2㎞거리다.
옛사람들 혹은 등산객이 다니던 산길은 희미하긴 해도 유심히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수 있을 정도였다.

약 1㎞ 정도 거리의 오르막은 경사가 매우 가팔랐다.
짧은 거리니 만큼 경사가 가파른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경사도 35%~50% 오르막을 이동하는 것은 여간 숨찬 일이 아니었다.
그 오르막 주변으로는 참나무만 빼곡할뿐 소나무는 거의 없었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서서 정상까지 약 200~300m거리는 평균 10% 정도의 완만한 오르막이었다. 거의 평지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옹강산(翁江山.해발 831.7m)은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와 경주시 산내면 일부라에 걸쳐 있는 산이다. 영남 알프스 산군 가운데에 있지만, 이에는 속하지 않는 독립된 산이다. 
옛날에 아주 큰 홍수가 났을 때 옹강산의 한 봉우리가 옹기만큼 물에 잠기기 않았다고 하여 옹강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봉우리가 옹기처럼 생겼다고 하여 옹기산이라고도 한다. 
옹강산 정상에는 솔내음산악회가 2005년5월22일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다.<사진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옹강산 일대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신라통의 석영 안산암이 주를 이룬다. 석영 안산암으로 이루어진 문복산, 가지산, 운문산은 풍화에 강하기 때문에 1,000m 이상의 높은 산지를 이룬다.
옹강산 정상에서 청도방면으로는 소나무로 이루어진 능선이 유명하다. 분재같은 소나무가 탄성을 자아내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옹강산정상에서 오롯재까지 2.5㎞거리의 시경계에서도 분재같은 소나무를 종종 만나기도 했다.

옹강산 정상에서 300m 정도 거리의 시경계는 경사가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300m 지점에서 약 100m 정도는 –60%~-40% 정도로 급경사 구간이다.

3월16일 봄 기운이 완연했지만, 그늘진 곳에는 아직 음달에는 언땅이 녹지 않은 곳도 있었고, 더러는 녹으면서 진흙탕길이 돼어 미끄러운 곳도 적지 않았다.

옹강산 정상에서 2.2㎞를 이동한 곳에 품 넓은 소나무 하나가 떡하니 서 있었다.<사진⑥>
여러갈래로 가지가 뻗었고 가운데는 꽤 면적이 넓었다. 참가자 몇몇을 제외하고 거의 전원이 그 나무에 올라 사진을 찍었다.

옹강산 정상에서 2.5㎞를 이동하면 이정목 하나를 만난다. 청도산악회는 옛고개로 적어 놓았다.
옛 명칭은 오릇골재라 한다.
경주시 산내면 일부리와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를 오가던 옛길에 있는 고갯마루다.
그 고갯마루에서 청도군쪽으 약 2㎞정도 내려가면 오진리 마을회관이 있다.

청도산악회가 세워둔 이정목에는 오진리 회관까지 2.3㎞라고 알리며 방향을 지정해 두었지만, 일부리쪽으로는 내려가는 곳 방향표기도 없고 지명표기도 해 두지 않았다.<사진 ⑦>
청도군 애향단체가 세운 것이니 그럴려니 수긍할수도 있겠다다 싶다가도, 청도쪽 오진리와 산내쪽 일부리 사람들이 왕래했던 옛길이었던 만큼 방향표시라도 해 두는 아량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시경계길을 걷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오릇골재(옛고개)에서 일부리 쪽으로 난 옛길을 따라 하산했다.
오릇골재에서 일부리까지 1.6㎞ 산길은 옛길의 전형의 보여주고 있었다.지그재그로 꼬불꼬불 만들어진 길은 오가던 사람들의 노고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지혜였을 것이다.<사진⑧>

산 아래쪽으로 내려오자 성질급한 진달래는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진 ⑨>
3월16일, 2024년 새봄이 성큼 와 있었다.

그 산길을 벗어 나니 고사리밭도 있고 일부리 뒤쪽으로 묵혀둔 논이 나타났다.
옹강산에서 발원한 계곡물이 만든 냇가를 따라 난 길을 500여m 더 걸어 내려와 일부리 경로당 마당, 심천마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제15차 경주시경계탐사를 종료했다.<사진 ⑩>

경주에서 산내면 일부리로 향하던 오전에는 독립운동가 일천 정수기선생 기념비를 방문했다.<사진①>

산내면으로 가는 길에 건천IC 부근에 있는 의사 일천 정수기선생 기념비를 방문했다.
① 산내면으로 가는 길에 건천IC 부근에 있는 의사 일천 정수기선생 기념비를 방문했다.
신라천년 고찰 심원사.
②신라천년 고찰 심원사.
심원령 이정목. 청도산악회가 세운 것이다.
③심원령 이정목. 청도산악회가 세운 것이다.
심원령에서 기자가 발견한 상평통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④심원령에서 기자가 발견한 상평통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빨간색 상자안 사진은 상평통보 발견상태. 
심원령에서 옹강산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 언덕에서 저 멀리 산아래 심원사가 보인다.
심원령에서 옹강산으로 향하는 가파른 오르막 언덕에서 저 멀리 산아래 심원사가 보인다. 파란색 점선 안이 심원사다. 
신비한 자연. 나무가 ㄷ자를 세운 모양이다.
신비한 자연. 나무가 ㄷ자를 세운 모양이다.
옹강산 정상 표지석과 이정목.
⑤옹강산 정상 표지석과 이정목.
능선 오른쪽 아래로 일부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산 사이, 냇물이 흐르는 곳, 마을이 들어서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능선 오른쪽 아래로 일부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산 사이, 냇물이 흐르는 곳, 마을이 들어서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출발지 5.2km지점에서 만나는 품넓은 소나무 한그루. (해발고도 524m. 북위 37.709515 동경128.999786.)
⑥출발지 5.2km지점에서 만난 소나무. 해발고도 524m 북위 35.909515 동경 128.999786
오롯재 이정목.출발지 5.5.km지점. 해발고도 510m 지점. 북위 35.712101 동경 128.997330
⑦오릇골재 이정목.출발지 5.5.km지점. 해발고도 510m 지점. 북위 35.712101 동경 128.997330
오롯재에서 일부리로 내려가는 옛길. 지그재그 꼬불꼬불 옛길의 전형을 보여준다.
⑧오릇골재에서 일부리로 내려가는 옛길. 지그재그 꼬불꼬불 옛길의 전형을 보여준다.
경주 남쪽 산에는 3월16일 봄이 성큼 다가 와 있었다.
⑨경주 남쪽 산에는 3월16일 봄이 성큼 다가 와 있었다.
일부리 뒷쪽 농경지.
일부리 마을. 
일부리 경로당에서 15차 탐사를 종료했다.
⑩일부리 경로당에서 15차 탐사를 종료했다.
옹강산에서 오진리 방면 능선에 있는 소나무. 사진 김원태
옹강산에서 오진리 방면 능선에 있는 소나무. 사진 김원태
마치 분재해 놓은 듯한 소나무
 분재같은 소나무. 사진 김원태

<15차 경주시경계탐사 탐사구간 요약 영상>
 

*제16차 탐사는 4월20일 진행합니다. 4월1일부터 경주포커스 홈페이지에서 참가자 신청 접수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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