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넘어 희망을 가꾸자...도종환 특강 '시에게 길을 묻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가꾸자...도종환 특강 '시에게 길을 묻다'
  • 김종득 기자
  • 승인 2012.10.26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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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민포럼 창립기념행사

▲ 강연을 마친 도종환 국회의원이 저서에 서명을 해 주고 있다.
도종환 국회의원(시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이 25일 경주시청소년수련에서 열린 경주시민포럼 창립 기념행사에서 오후8시부터 약 1시간동안 특강했다.

이날 강연제목은 ‘시에게 길을 묻다’.
1시간여 동안  자신과 신동엽 시인의 작품 등  총  4편의 시를 소개 하면서  그가 바라는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해 청중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맨 먼저 소개한 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에서 지은 자신의 작품 '새벽초당'
그는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실패한 뒤 좌절하지 않고 일어나려 한 정신이라고 했다.

지난 5년동안 진행된 수많은 퇴행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은 결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새벽 초당
도 종 환

▲ 강연하는 도종환 국회의원
초당에 눈이 내립니다
달 없는 산길을 걸어 새벽의 초당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오래된 실의와 편력과 좌절도
저를 따라 밤길을 걸어오느라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섬돌 옆에 앉았습니다
선생님,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무릉의 나라는 없고 지상의 날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 깊은 병도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걸 압니다
대왕의 붕어도 선생에겐 그런 충격이었을 겁니다
이제 겨우 작은 성 하나 쌓았는데
새로운 공법도 허공에 매달아둔 채 강진으로 오는 동안
가슴 아픈 건 유배가 아니라 좌초하는 꿈이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노론은 현실입니다
어찌 노론을 한 시대에 이기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의 곳간을 열어 굶주린 세월을 먹이겠습니까
하물며 어찌 평등이며 어찌 약분이겠습니까
그래도 선생은 다시 붓을 들어 편지를 쓰셨지요
산을 넘어온 바닷바람에
나뭇잎이 몸 씻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고
새벽에 일어나 찬물에 이마를 씻으셨지요
현세는 언제나 노론의 목소리로 회귀하곤 했으나
노론과 맞선 날들만이 역사입니다
목민을 위해 고뇌하고 싸운 시간만이 운동하는 역사입니다
누구도 살아서 완성을 이루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그곳을 향해 가는 일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미진선의 길입니다
선생도 그걸 아셔서 다시 정좌하고 홀로 먹을 갈았을 겁니다
텅텅 비어 버린 꿈의 적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눈밭이 진눈깨비로 바뀌며
초당의 추녀는 뚝뚝 눈물을 흘립니다
저도 진눈깨비에 아랫도리가 젖어 있습니다
이 새벽의 하찮은 박명으로 돌아오기 위해
저의 밤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댓잎들이 머리채를 흔듭니다
바람에 눈 녹은 물방울 하나 날아와 눈가에 미끄러집니다

이어 철거민과 경찰관등 6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당시의 무리한 진압과 실패한 작전을 지목하면서, 단군이래 최대 개발사업 시행을 앞두고 ‘재벌의 개발 이익'을 지켜주려 했던, 친재벌 정권의 본질, 킬링의 정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현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와 좌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결코 대통령 노무현 혼자 혹은 정권에 참여한 사람들만의 좌절과 실패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실패와 한계, 좌절이었다”고 평가한 그는 "다산 선생도 그가 꿈꾸었던 많은 것들을 살아 생전에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삶 자체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었 듯이 인생을 던져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려는 노력을 결코 멈추지 말자"고 말했다.
실패와 좌절은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그 속에서 희망을 가꾸는 노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특강하는 도종환 의원

이어 “그는 다음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1968년 신동엽 시인이 발표한 ‘산문시 1’을 소개했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귀한 시였다.

산문시 (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 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 역장 기쁘시겠오 라는 인사 한 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 다 ㅇ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 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 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 나라 배짱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문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툼 사색 뿐 하늘로 가는 길가렌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이미 40여녀전 신동엽 시인이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어했 듯이’ 지도력은 있되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는 대통령,특권 없는 삶, 노동하는 삶을 존경하고 배려하는 대통령을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분열이 아닌 화합을, 작은 차이로 차별하지 않는, 화이부동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오랜 바람도 드러냈다.

1시간동안 이어진 강연의 막바지.
그는 “헌법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 일찍이 신동엽 시인이 꿈구었던 그런 대통령을 가진 나라, 그런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드는 국민,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자”면서 그의 작품 '담쟁이'를 소개했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척박한 벽에 살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절망적인 환경을 아름다운 풍경으로 만들어 가는 담쟁이처럼, '보수, 차별, 불균형의 벽'이 너무나 높고 견고한 이 절망적인 사회에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해 함께 손 맞잡자고 노력하자는 메시지였다.

▲ 하늘호의 축하공연.
▲ 도리학교(도리농촌유학센터) 학생들의 공연
▲ 풍물패 '얼지기'의 사물놀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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