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학교 사태를 되새기며....
에바다학교 사태를 되새기며....
  • 신경진
  • 승인 2011.09.21 12:0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재] 신경진- 홀로더불어 1

 

 
-대구대학교 치료특수교육학과 졸업
-경북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
-장애전담 '아이꿈터'어린이집 원장
-경주대학교 특수체육교육학과 외래교수
-참교육학부모회 경주지회장
-경주시보육정책위원
-경주시립도서관 운영위원

먼저 '홀로 더불어'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 ‘시작’이 꽤 만만치 않았음을 고백한다.
장애아동 교육에서 시작된 사회에 대한 나의 관심이 장애인의 인권으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과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인권으로 확장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경험의 ‘함께함’이 작용했으리라 믿는다.
그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통해 우리들의 마음이 ‘함께한 듯’ 따뜻하고 넉넉해지기를 바라며 첫 번째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최근 ‘도가니’(청각장애학생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공지영작가의 소설)라는 책을 읽고 나니, 그 책이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한껏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모대학의 존경받는 한 노교수님께서 ‘에바다 사태(평택지역 농학교와 장애인 시설에서의 인권유린 사건)’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의 완성을 몹시 뜻깊게 생각하며 직접 지금의 ‘에바다학교’를 다녀온 후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접하며 가난한 장애아와 그 가족들의 인권을 짓밟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인간의 약한 일면들을 다시 들추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산 증인이신 그 노교수님은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에서 생방송을 통해 공개적으로 해결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을 더 끌어 7년만에 해결된 장애인 복지시설과 사립특수학교재단의 비리문제인 에바다사태를 우리 사회의 역사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역사에서 장애인 복지시설과 특수학교들은 민간독지가에 의해 출발된 것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솔선해서 해준 독지가들은 무조건적인 칭송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장애인복지가 수혜자와 지역사회 구성원들과의 적절한 소통(공개와 비판, 후원과 자원활동) 없이 성역화되고 그 수가 충분하지 못하게 진행되는 동안 그곳은 가난하고 힘없는 장애인과 가족들에 대한 인권유린의 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에바다 사태’나 소설 도가니에 나오는 ‘파렴치한 자선사업가’는 우리와 먼 이야기만은 아닐 수 있다. 작은 지역사회 안에서 ‘좋은 일 하십니다’로 장애인복지와 교육이 표현되고 있는, 서로 인간적으로 얽히고 얽힌, 경주라는 곳에서도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는 존재할 수 있다.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부모를 가진 장애 학생들을 향한 인권 유린은 우리 사회 속에서 항상 있어왔고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몇해 전 경주의 모 장애인 시설에서 일어난 약물과다로 추정되는 한 중증장애아동 사망 사건이 PD수첩에 방영되면서 지역사회가 한차례 술렁거리기도 했다.

가난하거나 지적능력이 부족한 장애인 부모를 둔 장애아동은 더더구나 인권유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부모가 그 아이의 고통에 대해 변호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입장이 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근근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부모, 본 인 한 몸도 추수리기 힘든 지적장애나 중증장애를 가진 부모는 장애를 가진 자녀를 보살펴주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 기관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 그 다음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자녀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참지 않아도 될 것이다.

최근에는 당당히 장애를 가진 자녀의 권리를 사회에 요구하는 부모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취약계층 가정의 장애아와 복지서비스가 열악한 지역의 장애아는 부모의 보호 속에서 살지 못하고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처지로 살아갈 확률이 여전히 높다. 도가니라는 소설의 피해 장애아동들의 부모들도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회적 약자이다. 그리고 몇 해 전 경주의 모 장애인 시설에서 숨진 장애아동의 부모도 과일행상을 하는 가난한 가정 살림에 부모 중 한명이 지적장애가 의심되는, 아주 능력이 작은 사람들이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라고 했다.
장애인 복지와 장애인 교육, 봉사... 이런 것들은 멀리서 보면 아주 아름다워보인다.
그러나 그 가까이 다가가면 온갖 어려움들, 인간의 나약한 면면들을 건드리는 유혹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절대적으로 의존해 있는 그들에게 나는 구경하는 방관자가 될 것인지, 그들과 단 한 순간이라도 함께하며 그들과 소통하는 이웃이 될 것인지....그저 멀리 있다면 장애인과 그 가족 혹은 그들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사람들을 그저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아주 짧은 한 순간이라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봐준다면 그 때부터 작은 마음의 요동들이 전해져 올 것이고 작은 실갱이들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확실히 멀리서 바라보는 것보다 비극적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과 그들을 둘러싼 풍경들은 확실히 더 아름다워질 것이며, 장애인들의 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서게 될 것이다.

그저 바라만 본다면 장애인들의 삶은, 그리고 인권은 동정이라는 틀 속에서 늘 비극으로만 점철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삶을 통해 장애인들의 눈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내 삶이 얼마나 충분하고 아름다운지, 왜 그들과 함께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