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과 여성정치인
선덕여왕과 여성정치인
  • 경주포커스
  • 승인 2013.07.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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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김호상, 문화유산 둘러보기

▲ 황룡사지 9층 목탑지 전경.선덕여왕이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초청하고, 신라의 장인 200명을 동원하여 만든 목탑. 9층 목탑의 자리는 한 변의 길이가 22.2m, 높이는 225척(약 80m)이나 되는 거대한 탑이다. 목탑은 높이 때문에 여러 차례 벼락을 맞았고 또 지진 등으로 기울어져 다섯 차례에 걸쳐 수리와 재건을 실시하였다는 사실이, 경문왕 13년(873) 탑을 재건할 때 만들어 넣은 사리함내의 [찰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고종 25년(1283)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고 지금은 초석과 심초석만이 남아 있다. <글.사진=김호상>

[삼국사기]에 신라 제27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의 이름은 덕만(德曼)으로 진평왕의 맏딸이었으며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 뿐만 아니라 총명하고 민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평왕에게 아들이 없자 나라사람들이 덕만을 왕으로 추대하여, 우리역사에 있어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재위기간 동안 귀족자제들을 당나라 국학에 입학시키고 황룡사 9층 목탑, 분황사, 첨성대를 건립하는 등 여러 가지 문화업적을 쌓았다. 또한 당나라와 한층 긴밀한 외교를 펼쳤으며 김춘추와 김유신 그리고 비담 등을 중용하여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예지하여 알아맞힌 일이 세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향기 없는 모란꽃과 관련한 이야기이다.

[삼국사기]에는 어느 날 진평왕은 당나라에서 가져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덕만에게 보였더니, 덕만은 ‘비록 이 꽃은 매우 아름다우나 틀림없이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왕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라고 묻자 ‘이 꽃그림에 나비가 없는 까닭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림에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향기가 없는 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라고 덕만이 대답하였다. 그것을 심으니 과연 말한바와 같았으니 덕만이 어릴적부터 얼마나 영민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는 여러 신하들이 왕에게 어찌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물으니 왕이 말하기를 ‘꽃을 그리면서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당나라 황제가 내가 혼자 지냄을 조롱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란꽃〔牧丹〕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원산지는 중국이다. 이 꽃은 전통적으로 중국의 국화였는데, 당대(唐代) 이후 중국 사람들에게 특히 애호 되었다. 이러한 점과 진평왕대부터 당나라에 자주 사신을 보내어 밀접했던 외교관계를 근거로 든다면 [삼국유사]의 기록대로 선덕여왕을 조롱하기위하여 그런 그림을 보낸 것이 아니라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후대에 우리 손으로 폄훼되어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박근혜대통령의 중국방문의 평가에 대해서는 여당은 ‘동북아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뜻을 같이한 의미 있는 장이었다며, 양국이 한반도 비핵화 등에 공동 노력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정치사회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양국관계를 대폭 발전시키기로 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 평가하였다.
 

 
1967년 경북 청송 출생
1985년 동국대학교 입학
2003년 대구가톨릭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1993.3 ~2005.1 동국대학교 경주박물관 조교, 연구원, 전임연구원
2005.1 ~ 2011.12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조사연구과장, 조사실장
2012.3 ~ 현)위덕대학교 박물관 전임연구원
2010.3 ~ 현)대구가톨릭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산학협력교수
반면 야당들은 한중정상회담 결과에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한중FTA와 6자회담 등에 관해서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러한 평가들은 우리국민들 개별적으로도 다양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필자의 기준에서 본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으로서 한미, 한중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된다.

선덕여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의 신분으로 왕위에 올라 16년동안 신뢰와 원칙의 용인술을 구사한 왕이었다. 요즘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살벌한 정치판에 뛰어들어 여성상을 잃지 않고 그 어떤 고난의 순간에도 침착한 태도를 보이며 여성정치인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들이 변함없이 선덕여왕처럼 강한 리더쉽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현명한 여성정치인으로 남아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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