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원희/경주경실련 전사무국장] 안전에 대한 확률론적 맹신은 재앙의 씨앗이다.
[특별기고-이원희/경주경실련 전사무국장] 안전에 대한 확률론적 맹신은 재앙의 씨앗이다.
  • 경주포커스
  • 승인 2016.12.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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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희/경주경실련 전사무국장>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해서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재적 위험성은 상존한다. 그리고 그 위험성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발생가능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와 원자력관련 종사자들은 국민들에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안전하다고 말한다. ‘최악의 상황은 확률이 매우 낮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정부와 사업자들은 원전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날 확률을 100만분의 1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세계의 442개 원전 중 5등급이상의 사고가 난 것은 6개, 일반에게 잘 알려진 스리마일 원전과, 체르노빌 원전, 후쿠시마 원전만 해도 3개로 100만분의 1이 아니라, 100분의 1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목격해왔다. 그리고 이중 절반은 기계적 결함이 아닌 인적오류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은 인간의 실수와 오만함이 빚어낸 참사이다.

어떻게 대응해야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9.12 경주지진을 돌이켜보자. 지진 발생 후 순간적으로 통신이 마비되었고, 교통도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재난문자는 8분후에 도착하였으며, 재난방송은 오직 JTBC에서만 진행되었으며, 지상파 3사는 드라마를 방송하였다. 경주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지 못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자체는 어떻게 대응했었는가? 실질적으로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2014년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당시 경주시의 현장통제 미숙으로 인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것은 재난발생시 경주시의 행정적 대처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최악의 재난은 지진과 방사능재난이라는 복합적인 형태의 재난을 가정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역의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자체장이 지휘를 한다. 그러나 방사능재난발생시 현장방사능지휘센터가 구성되고 원안위사무처장이 현장 지휘를 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출입구를 개방하고 진동이 멈춘 후 건물 밖으로 신속히 대피해야하며, 넓은 공터나 대피소로 대피해야한다. 여진으로 건물붕괴의 추가피해의 발생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사능재난발생시 발전소밖으로 방사능이 누출되는 적색비상이 발령되면, 주민들은 출입구와 창문 등을 모두 닫고 실내에 대기해야한다. 외부는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 때문에 실내로 신속히 이동해야한다. 지진과 방사능재난이 동시에 발생하면 과연 우리는 어떤 지침을 따라야 하는가? 실외로 대피할 수도, 실내에 대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발생가능성이 낮다고 하는 7.0이상의 지진발생시 어쩌면 우리는 실내에 대기할 수 있는 건물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변지역 5km를 제외한(외동 제외) 나머지 지역은 방사능 방호물자와 구호약품 등이 지정된 보관장소에 저장되어 있어, 주민들은 이곳으로 방문해 물품을 수령해야하는데, 과연 현재 시스템은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이러한 물품들을 배포할 수 있는가? 주민들은 어디서 방호물품을 받아야하는지도 대부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지체되는 경우, 물품수령을 위해 외부에 있는 주민들은 피폭위험이 높아져, 오히려 주민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들 수 있다. 대피소는 초등학교 등의 공공시설물들 위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이 시설들은 내진설계나 방사능 방호시설이 되어있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20~30km이내의 주민들의 소개 역시 현실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다. 9.12지진 당시 경주를 벗어나려는 시민들의 차량으로 일시적으로 교통이 마비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보다 큰 강진이 발생한다면 도로의 이용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복합재난 발생시, 시민들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가?

우리나라의 원자력 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은 원자력 시설에 대한 물리적 방호는 규정하고 있지만, 주변지역의 방호계획에 관한 규정만 있을 뿐, 주민들을 위한 방호 시설에 대한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아니, 방재대책법상 방사능을 막아줄 대피소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합 재난발생시 어떤 지침을 따라야 하는가? 이것이 내진설계가 된, 방사능 방호가 가능한 지하대피소와 신속하게 방호물자를 배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이다.

이상 최악의 상황발생시 어떠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대형복합재난에 취약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물론 극단적 상황을 가정한 것이므로 이러한 재난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고 해서 대비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전사고는 발생시 대형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아직 우리에게 시간과 자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부는 확률론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준비는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는 안전 목적으로 받은 부담금을 엉뚱한 목적으로 탕진하고 있다. 주민들은 비상사태 발생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복합재난 발생시 행동요령은 상충되는 내용이 존재한다. 어떤 지침을 따라야 하는가? 또한 방사능 재난발생시 방호물품 배포방식은 오히려 주민들을 위험하게 만든다. 주민들을 비상계획구역 밖으로 대피시킬 수단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시설도 요원하다.

우리는 이러한 모순들을 하나씩 바로 잡아야만 한다. 지진 등의 재난 예보시스템과 시내지역의 신속한 방호물자 배포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해야한다. 지자체는 안전목적으로 특별회계로 편성된 지역자원시설세는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방사능 대피소건설과 방호물자 및 구호물자 확충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전체시민들에 대한 교육확대도 시급하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원전은 안전하다’는 확률론적 맹신으로 대비를 게을리 한다면, 우리는 이땅에 이미 재앙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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