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끼의 삶을 생각하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끼의 삶을 생각하다
  • 경주포커스
  • 승인 2013.11.2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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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경주 둘렛길 생태와 환경이야기 ④

경주포커스는 특별기획으로 진행중인 둘렛길 탐사의 후기와 함께 이현정 경주숲연구소장이 탐사지역의 생태를 기록한 글을 <경주 둘레길에서 느끼는 생태와 환경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한다.
네번째 이야기는 11월16일 경주시 산내면 대현리와 울주군 상북면 소호리 구간, 제8차 경주 둘렛길 탐사산행의 생태 이야기다.

▲필자 - 이현정
<경주 숲연구소장>

쌀쌀한 날씨 속의 찬 기운이 내 볼을 따끔하게 후려치듯 스쳐지나가는 늦가을의 마지막 산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사람들은 찬 기운에 익숙한 듯 살짝 고개를 묻듯이 온기를 떠나보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찡그림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내 남편이 나를 황룡사9층목탑 모형물 앞에 내려다 놓는다.
그렇다. 늦가을 어떤 친구들이 찬기운에 익숙해져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 지 나에게도 아직 미션이다.

태종마을에 도착한 일행은 20명. 계곡 옆에 어설프게 지어진 낡은 교회를 옆에 끼고 돌아 계곡으로 들어선다.
계곡은 터널을 뚫어 놓은 것처럼 하늘 위는 양쪽의 키가 큰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교목들이 가지를 계곡 중앙으로 벋어 고개를 완전히 젖혀서 보면 하늘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바닥엔 크고 작은 돌들이 빼곡히 뒹굴고 있다. 그리고 이끼들이 지천에 깔려 있다. 계곡이 끝날 무렵에 이끼들은 보이지 않는다.

▲ 태종마을에서 불송골봉으로 향하는 기다란 계곡. 계곡은 터널을 뚫어 놓은 것처럼 하늘 위는 양쪽의 키가 큰 졸참나무와 갈참나무 교목들이 가지를 계곡 중앙으로 벋어 고개를 완전히 젖혀서 보면 하늘이 거의 다 가린다.
우리는 이 시기에 계곡을 타고 올라가는 행운을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기는 건조함으로 가득 찬다. 산행이 있기 며칠 전 뉴스에서 국립공원은 서둘러 12월 15일까지 주요 탐방로는 통제를 한다고 했다. 건조함으로 인해 아주 작은 불씨도 용납지 않기에.

여름 내내 잘 자라던 이끼의 미끄러움을 이기며 올라가는 것은 내 몸의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여름도 아니고 초가을도 아닌 이 계절에 계곡에서 터줏대감노릇을 하고 있는 생존의 주인공 이끼를 감히 처절히 뉘기며 밝고 올라간다.

이끼는 현재 육상식물로의 진화모델도 아니고 이 친구로 인해 발달하게 된 식물종류도 딱히 없다. 이끼는 이끼만의 생태가 따로 있는 것이다.
잠시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끼는 사막과 바닷가를 제외한 곳 외에는 살아갈 수 있는 친구이다. 오히려 환경에 열악하게 적응해 진화해온 친구다.

▲ 건강한 소나무에 붙어사는 이끼.
1N세대(배우자체)와 2N세대(포자체)가 돌아가며 생존과 번식을 이끌어 왔다. 배우자체에서 1N(암)과 1N(수)과 만나서 수정을 하게 되면 포자체(2N)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세대가 교대가 되는데 포자체(2N)은 감수분열을 하여 염색체 2세트를 1세트(1N세대=배우자체)로 나누어서 다시 포자로 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1N세대인(배우자체)로 다시 돌아가 배우자체끼리 암수로 나뉘어서 수정을 하고.....계속 교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배우자체가 주변의 환경에 적응해야 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들은 물가를 떠날 수가 없다. 아니 물가가 아닌 곳에 자리를 잡았다면 비가 와야지만 고인 빗물 속에서 수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렇게 이들은 힘겹게 버티어 내며 우리가 둘렛길 숲 계곡을 들어섰을 때 그 자리에 있었다. 이들이 계곡 숲에 자리 잡았을 때는 오히려 긴 겨울 이미 봄, 여름 동안 온몸으로 빨아들인 습기를 가득 머금어 주변의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함이다.

▲ 포자 주머니를 달고 있는 이끼.
이끼는 습기를 잘 가둔다. 오래된 나무에 이끼가 자라는 것은 나무에게 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습기를 나누며, 머금어서 자신도 이용한다. 관다발이 없기에 온몸으로 습기를 받아 들여야 한다. 이들이 있기에 숲은 사계절 내내 건조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송골봉을 통과하면서 더 이상 계곡을 만날 수 없었지만 처음 어두운 계곡 숲을 통과하며 초록빛깔 돌무더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곁을 지나가고 때로는 짓눌렀지만 이들은 어느 숲을 가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쓰러진, 썩어가는 나무통, 숲땅, 크고 작은 돌멩이와 바위 그리고 살아 있는 나이 많은 나무들에게도…
숲에서도 나이 많은 어른은 보다 작은 생명체를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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