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경주시경계탐사] 기록- 천년 고성위로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꽃길 여정
[제3차 경주시경계탐사] 기록- 천년 고성위로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꽃길 여정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03.2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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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경계 제3구간 탐사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7번국도 경계~외동읍 녹동리 관문성)

△ 일시 : 2023년3월18일 오전 9시40분~오후 3시50분. (6시간10분. 휴식 1시간 포함)

△ 이동거리 : 총 10.4㎞ (경주시경계 9.2㎞ + 경계진입구간 1.2㎞)

△ 참가인원 43명

△ 제3구간 탐사 요약영상 보기 :https://youtu.be/gdnYrmlmS9o

 

3월탐사구간.
3월탐사구간.

경주시가 주최하고 경주포커스가 주관한 경주시경계 제3차 탐사는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7번 국도 경주시 경계~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관문성 문터까지다.
울산시 북구 중산동 천곡동, 울주군 범서읍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에서 시작된 관문성(사적 제 48호)은 왜적의 침입을 막는 서라벌의 외곽 요충지이자, 현재의 경주시와 울산광역시, 거슬러 올라가면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나누던 경계선이었다.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동쪽 산 아래부터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서편, 치술령 줄기 남쪽까지 뻗친, 길이 약 12km의 석성으로 기록돼 있지만, 양남면 신대리 산성 또한 관문성의 일부로 보면 그 길이는 더욱 길어진다. 옛사람들이 괜히 만리성으로로 부른게 아닌것이다. 

경주 주변의 성곽과는 달리 산과 산을 연결해서 만든 이 산성은 평지나 골짜기에서는 내벽과 외벽을 모두 쌓는 협축법으로 쌓았지만, 산속의 성벽은 산 능선에서 약간 아래쪽 경사면에 외벽만 쌓는 내탁법으로 쌓았다.
평지 산성을 거의 보기 어려운 형편에서 이번 3차 탐사구간은 능선 아래쪽 경사면에 외벽만 쌓은 성벽 흔적을 따라 가는 여정이었다. 성벽위 혹은 그 옆 길이 곧 경계였다.

탐사에 동행한 김태남씨는 “진달래를 원없이 봤던 길”이라고 했고, 최해경씨는 그의 블로그(감성충전 골목길 경주그리다)에 포스팅한 후기 제목을 ‘봄 바람따라 봄 꽃길을 걷다’라고 했을 만큼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만끽한 ‘꽃 산행’이었다.

서기호 (사)경북숲해설가협회 경주시지부장님의 풍부한 숲 해설, 김성대 (사)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교사)의 알기쉬운 문화재 해설, 김병국 탐사대장의 맛깔난 입담에 더해 일평생 상선을 타고 5대양을 누빈 뒤 은퇴한 김경회씨의  재미난 원양상선 경험담은 10㎞남짓 산행길의 피로를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해 녹동리 관문성 지척인 녹동리 쇠부리터는 4차 탐사때 답사를 기약해야 했고, 독립운동가 박상진의사 생가터는 대형 버스가 진입하는 것이 어려워  개별 방문을 안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날 3차 탐사부터 경계주변 쓰레기를 수거 하기로 했는데,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상당량을 수거한 점은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었다. 

경주시 경계 제3차탐사에서 수거한 수거한 각종 쓰레기.
경주시 경계 제3차탐사에서 수거한 수거한 각종 쓰레기.

다음은 거리별 탐사요약.

09:00 실내체육관 출발

09:40 울산시 북구 천곡동 아이파크 아파트 앞 정차.

시 경계로 향하기 위해 논길을 걸었다.
시 경계로 향하기 위해 논길을 걸었다.

경주시 경계 관문성모화리 문터에서 울산쪽으로 약 800m 가량 이동해 버스에서 내렸다.
태화강 지류인 동천을 도보로 건너기 힘들어서다.
한라동아 아파트 뒤편 작은 다리를 건너 들판 사이 농로를 걸었다.
태화강 지류 동천을 경계로 울산시 북구 천곡동(왼쪽)과 중산동이 나눠진다.
울산시 중산동 고분군이 지척에 있다.

10:00 1.2㎞ 이동지점. 천곡제방 관문성

천곡제방에서 관문성이 다시 이어진다.
모화리 문터를 지나 동천에서 끊긴 관문성은 천곡제방에서 다시 이어진다.
43명이 동행했다.
43명이 동행했다.

천곡제방 옆 관문성에 도착했다.
양남면 신대리에서 출발한 관문성은 외동읍 모화리에서 성벽 흔적이 뚜렸하다.
문터가 있었지만, 7번국도 개설로 자취를 감췄다.
여기서 끊어진 관문성이 태화강 지류 동천을 건너 다시 이어진다.

10:37 2㎞이동 지점 산소 휴식.
초입에서 관문성벽을 확인한뒤 약 800m 거리 이동은 신우대 숲속을 지났다. 
해발고도 40m에서 115m 높이로 이동하는 구간, 초반 200m 거리는 18% 급경사로 조금 힘든 구간이다.
이 구간을 지나면 10%내외 완만한 경사다.

신우대 숲길은 곳곳이 사람을 위협하기도 했지만, 이 만한 숲을 보기도 쉽지 않은 만큼 힘든 기색을 내는 이가 없었다.
그 끝에 산소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길은 쉽다.
산소로 향는 길 곳곳에 키 큰 소나무가 즐비하다. 편안한길이다.
옆 경사진 곳은 성벽이다. 

10:47 2.2㎞이동 지점.

군용철조망으로 둘러싼 산소. 봉분은 쓰고 싶고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의 해코지도 막아야 하는 후손들의 고민이 담겨 있는 듯 하다.
군용철조망으로 둘러싼 산소. 봉분은 쓰고 싶고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의 해코지도 막아야 하는 후손들의 고민이 담겨 있는 듯했다.

산소에서 휴식한뒤 -8%정도 내리막길이 200m가량 이어진다.

길가에 군용 철조망에 둘러쌓인 산소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낮은 봉분을 군용 철조망으로 둘러싸 놓았다.
봉분은 쓰고 싶고 멧돼지를 비롯한 산짐승의 해코지도 막아야 하는 후손들의 고민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산소 왼편 울산쪽 야산에는 민주화운동유공자 정계석님의 묘가 있다.
묘비문으로 그 분의 흔적을 드듬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 정계석님의 묘.
민주화운동 유공자 정계석님의 묘.

1933년 11월 울산시 울주군 농소면 천곡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26세이던 1960년 제3대농소면 의원을 지냈다. 1972년10월19일 울산 신민당 제15지구당 사무실에서 10월 유신 반대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10월30일 구속됐다. 1972년 11월23일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7개월간 복역 하고 고문 후유증에 따른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1978년 2월1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정부 산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2001년8월14일 고인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민주화운동 백서에 이름을 등재했다. 대법원은 2018년12월13일, 1972년 선포된 계엄법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 하면서 고인은 무죄가 확정됐다.
울산지법 제21형사부는 2021년 2월10일 유족들에게 형사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울산지법 제11민사부는 2021년5월15일, 200일간 구속기간중 물고문과 전기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인정해 민사보상금 지급토록 판결했다.

경계산길에서 만나는 보기드문 민주화운동유공자다. 이 분과 같은 선각자들의 희생이 오늘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자랑스럽게 '민주화운동유공자'라는 묘비를 세운 후손들의  귀한 마음도 느껴졌다.
 

10:53. 2.5㎞지점. 문산공단길과 속심이길.

울산시와 경주시 경계에 있는 한 주택의 담장. 관문성 성돌로 쌓은 모습이다.
울산시와 경주시 경계에 있는 한 주택의 담장. 관문성 성돌로 쌓은 모습이다.
산속에서 조금만 주의깊에 살펴보면 성은 금방 확인 할수 있다.
산속에서 조금만 주의깊에 살펴보면 성벽을 어렵지 않게 확인 할수 있다.

김해김씨 재실과 화려한 묘를 지나면 좁은 도로가 나온다. 문산공단길이다. 
경주쪽 길은 외동읍 문산공단길, 울산시 천곡동에서 넘어오는 도로명은 속심이길이다.
울산경계 끝에는 울산광역시 북구협의회 농소3동위원회에서 1999년8월9일 세운 사적 제48호 관문성을 알리는 이정표가 서있다.
서너채의 주택 있는데, 이 주택의 주소지는 경주시 외동읍이다.

주택의 돌담은 관문성의 성돌을 가져다 놓은 흔적이 뚜렷하다.
도로를 벗어나면 다시 경계로 접어든다. 선광사로 이어지는 길이다.
등산로인데, 초입에 울산어울길이라는 탐방로 이름이 붙어있다.
이곳에서도 관문성 흔적 곳곳에서 확인된다.
울산과 경주의 경계는 관문성이라는 점을 더욱 또렷하게 알려 주고 있다.

11:14 3.2㎞지점 선광사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절이 있다. 바위에 핀 진달래가 아름답다. 사진 최해경.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절이 있다. 바위에 핀 진달래가 아름답다. 사진 최해경.

문산공단길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시 경계다. 
관문성 성벽 흔적이 뚜렷헸다.
약 600미터 산길을 이동하면 울산어울길 이정표가 처음 나타났다. 그 이정표에서 100미터 정도 제법 심한 오르막을 오르면 선광사가 나타난다.

해발 130미터 산중턱에 위치한 절인데, 3월5일 답사때도 그랬고, 18일 탐사때도 사찰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울산쪽을 바라보는 조망이 탁월하다.
동행한 최해경님은 “절 뒤편 집채만한 바위에 아슬 아슬 매달린 진달래꽃이 안쓰럽게 보였다”고 했다.
가쁜숨 몰아쉬기도 바쁠참에 세심하게 살핀 안목이 놀랍다.

절 오른쪽으로 탐방로가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울산시에서 탐방로를 잘 가꾸어 놓았다. 늘 그렇듯 탐방로 아래로 관문성 흔적이 뚜렷하다.

관문성은 산과 산을 연결하여 쌓은 장성 형식의 산성이다. 산지의 경우 성벽은 산 능선에서 약간 아래쪽 경사면에 외벽만 쌓는 내탁법으로 쌓았으며 평지나 골짜기에서는 내벽과 외벽을 모두 쌓는 협축법으로 쌓았다. 울산쪽 탐방로 경사면의 성벽흔적은 경사면 아래에 외벽만 쌓은 내탁법의 흔적을 뚜렷하게 보여고 있었다.

성덕왕 21년(722년) 10월, 왜구의 침입을 막기위해 모벌군에 길이 6792보 5척 규모로 쌓은 성(조선시대부터 관문성이라고 불림)을 만드는데 동원된 사람은 3만9262명으로 전한다. 변변한 장비하나 없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동원돼 피땀 흘렸을 옛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옛날 태어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관문성을 따라 이어진 경계길 내내 옛 사람들의 간난신고를 떠올리며, 동시에 다양한 상황을 상상하며 걸었다. 

11:29 3.6㎞지점 순금산 등산로 초입.

선광사에서 약 400m 가량 탐방로를 따라 걸는 길은 해발 200m에 불과해지만, 전망이 탁월했다.
탐방로 오른쪽 순금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발길을 옮겼다.

11:48 4.2㎞지점 점심휴식

순금산 9부능선에 있는 산소에서 휴식겸 점심식사를 했다. 뒤로 울산 현대자동차 미포조선소까지 조망할수 있다.
순금산 9부능선에 있는 산소에서 휴식겸 점심식사를 했다. 뒤로 울산 현대자동차 미포조선소까지 조망할수 있다.

600m 가량 등산로를 따라 이동했다. 산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진달래가 만발했다. 
제법 경사가 심한 길을 오르다 순금산 9부능선에서 나란히 자리잡은 산소 2기를 만났다. 
휴식을 겸한 점심식사 장소로 그만한 곳이 없었다.

12:35 4.6㎞지점 순금산 정상

순금산 정상에서 울산방향의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
순금산 정상에서 울산방향의 지리를 설명하고 있다.
순금산 정상위치. 경주시에 속한다. 사진 구글.
순금산 정상위치. 경주시에 속한다. 사진 구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400m 가량 오르면 해발 293m 순금산(舜琴山) 정상이다. 한자명 순은 순임금 순(舜)과 거문고 금(琴)이다.

옛날에 온 천지에 홍수가 나서 이 산이 섬이었을 때 정상 봉우리에 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여 이곳을 배내리라고 일컫는다고도 하고, 순임금이 백성을 위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산세가 수려하고 바위풍경이 뛰어나 순임금에 비유해 부른 이름이라고도 한다. 관문성이 지난다고 해서 울산에서는 관문산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순금산 정상표지석.
순금산 정상표지석.

경주쪽 조망은 문산일반산업단지에 즐비한 공장지붕만 겨우 보일뿐이지만 울산쪽 현대자동차, 미포조선 골리앗 크레인까지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정상의 위치는 지도상으로는 분명히 경주시 외동읍 문산리 경주문산일반산업단지 뒷산 경주땅이다.
그러나 정상 표지석은 울산의 산악회가 만든 것이다. 정상석을 울산 산악회가 만들었다고 해서 산을 울산에 뺏길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았다.

울산의 한 일간지는 지난해 향토답사기를 취재 보도하면서 울산시 북구 천곡동과 경주시 외동읍의 경계에 있다고 쓰고 있었다.
산의 위치는 울산과 경주의 경계에 걸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정상은 엄연히 경주땅에 속한다. 경주시 산악인들의 분발이 아쉽게 다가왔다.

12:43 5㎞지점 탐방로 삼거리.

순금산 아래 탐방로에서 삼거리.
순금산 아래 탐방로에 울산시가 세운 이정표.

정상에서 –18%~-10%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다시 관문성 흔적이 뚜렷한 경계다.
그곳에 이정표가 나타난다. 외동읍 문산리쪽에서 올라오는 산길도 나타난다.
탐방로에 삼거리가 있다.

여기서부터 다시 탐방로를 따라 가면 울산시에서 곳곳에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출발지로부터 5.4㎞ 지점에 해발 256m, 6.2㎞ 지점에 해발 254m 높이의 얕은 봉우리가 있다.
평균 해발 고도 200m내외의 탐방로에서 두 번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한다. 그러나 오르막이라고 해도 10% 내외, 내리막 역시 –10%내외의 경사로 그다지 심한편은 아니다.

천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천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순금산 정상이 자신의 50년 넘은 생애에서 가장 높은 곳을 밟아 보는 경험이라는 참가자 1명을 빼고는 40여명의 나머지 탐사단은 그다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6.8㎞지점 해발 192m높이의 탐방로에서 7.2㎞지점 해발고도 해발 247m까지 약 400m 탐방로는 13~15% 오르막, 그리고 천마산 정상까지 약 200m 구간은 22~26%의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다.
그 끝에 천마산 정상이 있다.

3차 탐사는 진달래꽃길 산행이었다. 사진 최해경.
3차 탐사는 진달래꽃길 산행이었다. 사진 최해경.

13:56 7.3㎞지점 해발 296m 천마산 정상이다.

천마산 정상까지는 경주시 외동읍 석계리와 울산북구 천곡동의 경계다.
경주쪽에서 보면 녹동리가 시작된다.
카카오 맵으로 천마산 정상은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 산 29번지로 표기된다.

경계는 다시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와 울산시 북구 천곡동이 마주한다.
천마산 정상에서 탐방로를 따라 이어진 약 1㎞ 이동구간은 –10%내외의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다. 

천마산 정상으로부터 1㎞ 지점에서 방향을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로 틀어야 경계길을 벗어나지 않는다.
자칫 쭉 가던길 방향으로 내려가면 울산쪽 편백림 산림욕장행이다.
3월5일 답사때도, 18일 탐사길에서도 산림욕장으로 가려다 경주쪽으로 길을 잘못든 등산객을 여러명 만날 수 있었다.
분기점에서 200미터 쯤 이동하면 송전철탑이 나타나고, 여기서부터 100미터 구간 달천 상류인 실개천(양계장이 있다)까지는 탐방길이 없는 -30% 급경사 구간이다.

14:38 8.5㎞지점 (해발 120m) 양계장.

지도에는 울산방향으로 산 아래 만석골못이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육안으로 확인은 되지 않는다.
하류 울산쪽 지명이 달천동인걸로 미뤄 달천으로 흐르는 실개천인것도 같다.
양계장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개짖는 소리가 발길을 재촉했다.

상아산쪽 시경계에 드러난 성벽흔적들.
상아산쪽 시경계에 드러난 성벽흔적들.

여기서부터 상아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상아산 아래는 동해고속도로 범서터널이 지난다고 한다.
경계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산길에서 관문성벽을 찾으면 정확하게 경계다.

그곳에서도 돌로 쌓은 성벽이 곳곳에 드러났다.
약 400m 관문성벽 오른쪽으로 보일락 말락 나있는 등산로는 경사도 25% 내외의 꽤 심한오르막이다.
길은 잘 구분되지 않지만, 역시나 돌무더기 성벽이 안내지도다.
나머지 300m 이동구간은 10%내외 경사로 그다지 어렵지 않은 길이다.

15:19 9.2㎞지점 해발 235.1m 상아산 정상.
상아산 정상은 시 경계에서보면 남쪽땅 울산지역에 속한다. 진달래 만발한 가운데 숲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마지막길을 재촉했다.
9.5㎞까지는 약간 내리막, 그리고 10㎞ 지점은 고도167m로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다.
이곳역시 재선충피해가 막심한 듯했다. 고사목을 훈증처리한 흔적이 마치 소나무의 공동무덤 같았다.
 

제선충병 방제후 훈증처리한 모습. 녹동리 야산 경주시경계다.
소나무 제선충병 방제후 훈증처리한 무더기들이 즐비하다. 녹동리 야산 경주시경계다.

 

15:52 10.4㎞지점 외동읍 녹동리 관문성 문터 도착 완료.

외동읍 녹동리 관문성 문터. 14번 도로가 성벽을 가로질러 나있다.
외동읍 녹동리 관문성 문터. 14번 도로가 성벽을 가로질러 나있다.

외동읍 모화리처럼 녹동리도 성벽의 흔적이 뚜렸하다.
이곳에 예전에는 관문이 있었지만, 울산시 범서읍과 경주시 외동읍 녹동리를 잇는 14번 국도로 인해 관문은 흔적도 없다.
다만 성벽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지럽게 내걸린 홍보현수막이 성벽을 가린채 뒤덮고 있었다.
 



*제3차 경주시경계 탐사 참가자 최해경 전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경주센터장의 블로그 게시 글 '봄 바람따라 봄꽃길을 걷다' 보기.
https://blog.naver.com/sigolgilmaum/22304882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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