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경주시경계탐사] 산내면의 또 다른 역사 - 5.16군사정부의 1961년 귀농정착사업 대상지
[제12차 경주시경계탐사] 산내면의 또 다른 역사 - 5.16군사정부의 1961년 귀농정착사업 대상지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12.15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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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면의 귀농정착지
 

경주시 산내면 귀농지. 울주군 상북면과 경계 부근으로 경주시의 최남단 문복산 아래다. 
경주시 산내면 귀농지. 울주군 상북면과 경계 부근으로 경주시의 최남단 문복산 아래다. 

경주시 산내면에는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세력이 설치한 국가최고 권력기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실업자 구제책으로 산 100정(町을 개간하도록 50세대를 정착시켜 농사를 짓게한 귀농지가 있다. (일제 강점기때 사용하던 토지면적 단위 1정은 3000평이다. 100정은 30만평이다.)

산내면 행정복지센터의 마을 소개를 보면, 대현4리는 귀농지 A,B지구, 대현3리는 C지구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현3,4리는 울주군 상북면 궁근정리와 가까운 곳이다.
당시 귀농정착사업은 경주시의 최남단 문복산 아래 30만평에 대해 경주시와 울주군 경계와 가까운 곳 부터 A,(15세대) B(20세대) C지구(15세대)로 나눠 1세대당 6000평씩, 총 30만평을 무상으로 개간하도록 했다.

5.16 군사정부귀농정착 사업

1961년8월19일 서울시 시공관에서 귀농정착민 7000여명에 대한 환송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보도한 대한뉴스 제328호 영상이 남아있다. 사진은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대한뉴스 제328호는 1961년8월26일 제작했다.
1961년8월19일 서울시 시공관에서 귀농정착민 7000여명에 대한 환송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보도한 대한뉴스 제328호 영상이 남아있다. 사진은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대한뉴스 제328호는 1961년8월26일 제작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5·16 군사정부는 1961년8월부터 식량증산과 도시 실업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귀농정착사업’을 시작했다.
귀농정착사업은 도시토목사업과 함께 긴급실업대책으로 실행돼 총 예산 12억7000만원이 투여됐다.

서울시에서는 같은해 7월23일부터 26일까지 각 구청의 사회과에서 귀농정착사업종사신고서, 세대주사진, 기류등본으로 신청을 받았다. 신청된 세대는 1인당 10일분의 양곡을 지급하고 8월1일에 시청 버스 및 트럭으로 정착지에 이송할 계획이었다.
매 인당 휴대할수 있는 행리(행장)는 5개로 제한하고, 최소한의 장유(醬油) 및 취사도구로 제한했다.

농림부는 8월9일 각 시도 농지개량과장과 건축기술직원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사업이 국토건설사업의 하나로써 1차로 총 2,406정보를 개간하여 실업자를 정착시키는 것이며, 사업추진에 있어서 보사부 주관하의 주택건축 및 방역, 용지매수, 토지배분계획,농기구 알선, 수송계획 및 개간작업등에 각별히 유의하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계획된 귀농정착사업에 6천여 세대가 신청하였고, 1,228세대가 선정돼 7,188명이 12개 지역 24개 지구로 떠났다.
실업세대가 3,163세대 중 673세대, 철거난민이 489세대중 350세대, 의거월남민이 신청한 203세대 전원, 기타 2세대가 선정되었다.

정리된 신문기사에 따르면 사업지역은 경기도 평택군, 충북 영동군 심천면, 예산군 오가면, 전북 장수군 계전면, 전남 함평균 손불면, 영광군 백수면, 경북 군위군 고로면, 월성군 산내면, 경남 함안군 북면, 강원도 영월군 상동면, 고성군 간성면, 양양군 토성면등이었다.

당시 정착민의 2세로 유일하게 현재에도 대현3리에 살고 있는 최태현씨에 따르면 월성군 산내면으로는 당시 50세대 324명이 이주했다.최씨의 경우 당시 나이가 어려서 개간에 직접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해진 6000평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정부에서 지시하는 각물(보리, 산두며, 누에고치)을 심고 내다팔았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귀농정착사업 예산편성을 보도한 1961년8월10일자 동아일보.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귀농정착사업 예산편성을 보도한 1961년8월10일자 동아일보.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정착사업에 대한 한국정부, 특히 농림부와 건설부의 문헌자료는 매립면적, 농산물 생산량 등 사업으로 이룬 성과중심이 기록이 대부분이고 민간과 현지에서 열할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전반 귀농정착사업에 대해서는 군사정부가 의도적으로 성과만을 부각시켰고 부정적인 면은 철저히 은폐했다. 국가기록원 문서철은 지역현지에서 올린 보고로 묶여 있으므로 정부 생산 문서에 비해서는 객관적이고 계획에 대하여 비교적 상세하게 이해할수 있는 자료이지만 일부에 국한돼 있다.
전국단위의 일목요연한 상황이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이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는 신문이나 잡지기사를 1차적으로 사업장이 있었던 지역을 아는데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했다. 그러나 정착사업 전반에 관한 문헌연구는 이뤄져 있지 않다. 

역사연구로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로 경험한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절실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생존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사업이후 계속 현지에 살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사업장은 농촌이었고 과거 황무지 지역이며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14년 9월26일 경주에서는 최태현씨를 만나 구술증언을 채록하는 등 전국각지에서 7명을 만나 채록했다. 이들은 성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생계를 꾸려 나갈 때 살아갈 터전을 마련하는 계기로써 정착사업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들의 구술을 통해 정착사업의 현지실상을 일부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재까지 확인한 전부다. <참고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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