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경주시경계탐사] 귀농정착민 2세 최태현씨가 기억하는 ' 1961년 귀농정착사업'
[제12차 경주시경계탐사] 귀농정착민 2세 최태현씨가 기억하는 ' 1961년 귀농정착사업'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12.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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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민 2세 최태현씨의 증언

최태현 설말선씨 부부가 산내면의 이주정착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말선씨는 산내면 출신이다.
최태현 설말선씨 부부가 산내면의 이주정착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설말선씨는 산내면 출신이다.

서울시 흑석동에 살던 최태현씨(문복가든 대표)의 부친은 영덕군 출신이었다.
한강 모래를 파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학교 소사로 근무하여 형이 중고등학교를 다닐수 있었다.
1950년생으로 초등학교 5학년때(11살) 부친을 따라 당시 월성군 산내면 대현리로 이동해온 최태현씨는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다.
부친이 농사경험이 있는 시골출신이어서 귀농정착 사업 대상으로 뽑힐수 있었던 것으로 최태현씨는 기억했다. 

1961년 8월 어느날 밤 산내면으로 향하는 이동정착민 50세대, 324명을 태운 화물기차는 용산역을 출발해 이튿날 건천역에 도착했다.
도착한 건천역에서는 군용트럭 50대가 동원돼 귀농정착민을 산내면까지 수송했다.
산내면 동골부근에 도착한 귀농정착민 50세대는 당시 동골 , 중리 등 산내면 대현리 50곳의 농가에 흩어져 각각 방 한칸씩을 얻어 살았다.

부모님과 8형제, 열명의 식구가 방한칸에서 산내면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추첨을 통해 50명이 각각 6000평씩의 개간할 땅을 지정받았으며, 지정받은 땅 부근에 지구별로 정착촌을 만들었다.

A지구에 15세대, B지구 20세대, C지구에 15세대의 집을 지었는데, B지구에 속했던 최씨는 당시 와항재 부근에 양철지붕아래 방1칸, 부엌1칸이 있는 집을 정부에서 인부를 동원해 지어 주었던 걸로 기억했다.
1970년대 대현3리 중리마을 이장을 지냈던 박순열씨(현재 83세)의 기억은 최씨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방2칸, 부엌1칸이라고 증언했다.

정착촌의 주택이 완성될때까지는 임시로 얻어 살던 집에 살며 각각 지정받은 땅을 오가며 황무지를 개간했다.
약 반년이 지나 정착촌이 완공된 다음에는 모두 각자 받은 땅 부근 정착촌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개간하는 생활을 했다.

개간을 할 동안에는 정부에서 밀가루를 넉넉하게 배급해 주었다.
땅을 일정면적이상 개간할 때 마다 정부에서 보리쌀과 밀가루를 보상으로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3-4년을 지원해 준뒤에는 정부 지원이 끊겼다.
산을 개간한 땅은 농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정부가 지시하는 작물(보리, 산두벼, 누에고치 등)을 재배해야 했다.
최씨 부친처럼 예전에 농사경험이 있던 정착민은 그래도 어느 정도 버텼지만, 나머지 이주정착민들은 70년대 들어 대부분 다시 서울로 떠나버렸다.

최태현씨에 따르면 정부는 1980년 개간한 땅에 농사를 짓던 사람들에게 6000평씩 무상으로 불하했다.
그러나 1961년 귀농정착사업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중에 그 땅을 불하받은 이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이들 대부분은  정부가 개인에게 불하기 전에 6000평의 땅을 쌀 5가마 ~10가마씩만 받고 팔고 나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980년 개간지를 무상불하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최초 정착민으로부터 땅을 매입하거나 권리금을 주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었다.

최태현씨의 경우 부친이 땅을 불하 받았으나 그 땅은 농사짓기에는 너무 어려운 땅이었다. 거의 산 정상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친이 불하받은 땅은 사실상 방치해 현재 산으로 변해 있다.

최씨는 예전 귀농정착착민이 정부로부터 받은 땅을 빌려 채소 농사를 짓다 불하받은 경우다.
80년대 들어 당시 개간지에서는 대부분 배추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고랭지 채소는 더 이상 돈벌이 수단이 되지 못했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농가들중에 하나 둘 그만두는 집이 생겼다. 최씨는 그곳에 식당을 개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씨는 그후 사업을 확장해 현재 캠핑장과 식당을 경영하며 토지만 3만5000평을 보유한 부자가 됐다.
고랭지 채소를 재배했던 나머지 토지 대부분은 그후 울산등 외지 사람들이 구입해 전원주택을 짓거나 펜션으로 변했다.
1961년 이주당시 80세대에 불과했던 산내면 대현3리는 현재 대현3리가 133세대, 대현4리가 219세대로 규모가 커졌다. 

증언의 더 많은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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