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경주시경계탐사] 가볼만한 ③ 최치백 정려비
최치백(1676~1744)의 효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52년(영조 28년)에 세운 정려비이다.
앞면에는 ‘효자 증조봉대부사헌부지평최공치백정려비(孝子 贈朝奉大夫 司憲府 持平 崔公 致栢 旌閭碑)’라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최치백이 7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를 지극히 모시니 그의 효행이 정성스러워 믿을 수 없게 꿩을 구한 신비스러운 이야기와 조선 20대 왕인 경종(1688~1724)이 승하하시자 3년 동안 상복을 입은 이야기와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용맹이 나가 싸운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으며 당시 부제학인 ‘오수채(吳遂采)’가 글을 짓고 당대 명필가인 ‘이광사(李匡師)’가 글을 썼다고 새겨져 있다.
유교 국가인 조선이 국가를 다스리는데 효와 충은 중요한 덕목이다. 마을 사람들이 잘 다니는 곳에 정려비를 세워 많은 사람이 이를 본받도록 했다. 시대는 변했다. 그러나 조상을 받들고 나라를 사랑하는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려각은 도로가 넓게 나고 높게 나 방치된 것 같다. 또 관리가 되지 않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시급히 옮겨 잘 보존해야 될 것 같다. 글 : 김성대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교사)
▶가는길
경북 경주시 내남면 상신리 551-4.
이조리, 덕천리를 지나 나오는 광석교에서 약 1.5㎞거리에 있다.
904번 지방도를 따라 박달리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면 만난다. 상신2리 마을회관을 왼쪽에 두고 500m 정도 박달방면으로 더 이동하면 나온다.
비와 비각은 도로와 붙어 있다. 도로에서 1미터 아래 텃밭에 있다.
비는 반듯 했지만, 비각은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 허술했다.
흔한 안내판도 하나 없다.
멀리서부터 유심히 살피면 도로 오른쪽으로 비각이 눈에 겨우 들어올 뿐이다.
내남면 안심리 암각화, 광석리 지석묘군에서 자동차로 5분 정도만 이동하면 만난다. 글 사진 : 김종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