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경주시경계탐사] 경계와 사람 1 - 지경마을 김성환씨 "주소만 울산 경주 다를뿐 사는건 한동네 주민"
[제1차 경주시경계탐사] 경계와 사람 1 - 지경마을 김성환씨 "주소만 울산 경주 다를뿐 사는건 한동네 주민"
  • 김종득 기자
  • 승인 2023.02.06 15: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환씨. 지경마을에서 태어나 75년을 살았다고 한다.
김성환씨. 지경마을에서 태어나 75년을 살았다고 한다.
김성환씨가  미역을 채취해  마치고 포구로 들어오고 있다.
김성환씨가 미역을 채취해 마치고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경주의 최동남 해안의 끝, 지경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에 속한다.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는 임진왜란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수병의 병영을 있던 곳으로 수용포리라 했다고 전한다.
수용포, 관성, 영암, 지경 4개부락으로 형성되고, 1,2리로 나뉜다. 지경마을은 수렴2리다.  
수렴리는 118세대 207명의 주민이 있는데, 지경마을에는 25세대 정도 산다고 한다. 

울산시 북구 신명동과는 천을 복개한 도로 하나를 사에 두고 경계를 이룬다.
이름없는 하천은 30년쯤 시멘트로 덮으면서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다닐수 있을 정도의 마을 진입도로가 됐다. .
지경마을은 이 길을 통해 울산에서 양남면까지 시원하게 뻗은 31번 국도인 동해안로와 연결된다.

하늘에서 본 지경마을. 파란 실선이 경계다.
하늘에서 본 지경마을. 파란 실선이 경계다. 아랫쪽은 울산, 윗쪽이 경주다.

김성환씨는 태어난 뒤로 75년동안 줄곧 이 마을에서 살았다. 
딸다섯 아들 한명도 시경계 지척에 있는 현재의 집에서 낳고 키우고 교육시키고 시집 장가 보냈다. 
김씨는 자신이 이 천을 복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옛날에 이 동네는 길이 없었어. 한 30년전쯤 그때만 해도 내가 제법 잘 나갈 때 였는데, 울산 국회의원, 언론사간부에게 술한잔 사면서 길좀 만들어 달라고 사정했더니 울산시와 경주시가 반반씩 돈을 내기로 하고 공사를 한거야.”

그 복개한 천을 사이에 두고 경주쪽의 도로명 주소는 지경길, 울산쪽이 신명길이다.
그러나 경계는 어디까지나 행정구역을 구분할뿐 사람들 사이에 경계는 없다.
왕래를 하는 것은 물론 같은 모임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성환씨는 “주소만 다르지 사는 건 한동네와 같다”고 했다.

“7,80년대까지만 해도 울산쪽 사람들 전기는 경주쪽에서 줬을 거야. 그때는 신명사람들 전기요금은 경주에 냈던걸로 기억해. 물도 예전에는 우리쪽에서 줬는데. 지금은 울산쪽 상수도가 잘돼서 그만주는걸로 알아.”

김씨는 젊어서는 정치망 어업을 했다.  제법 큰 배를 몰고 어업을 했지만 월성원전이 들어어고 어업권 보상을 받은 후에는 규모가 줄었다. 
지금은 미역, 다시마, 전복 양식업을 한다.
지경마을에서 김씨처럼 어업을 하는 사람은 10여명 정도라고 한다. 대개잡이, 참가자미, 통발, 유자망 어업을 하는 배는 지경마을을 통틀어 10척 정도 있다고 했다. 
 

하천을 복개해 만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울산, 오른쪽이 경주시 양남면이다.
하천을 복개해 만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울산, 오른쪽이 경주시 양남면이다.

 

경주포커스 후원은 바르고 빠른 뉴스제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