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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주년 3.1절 특별기획]① 경주는 3.1만세운동 영남대표지역... 천도교경주군교구, 만세시위 한달전 국권회복 49일 특별기도회 실행
김종득 기자  |  abc@gj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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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8  18: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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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주년 삼일절을 맞아 경주포커스는 3회에 걸쳐 특별기획 기사를 보도합니다.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만세시위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경주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외쳤고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그러나 국가보훈처 등 정부 기록물에서는 기독교계가 중심이 된  경주만세운동만 전해오고 있습니다.그런데 최근 천도교경주군교구 교당에서 삼일만세운동을 앞두고 그해 1월부터 2월까지 무려 49일간 특별기도회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기록으로 확인됐습니다.
<경주포커스>는 천도교에서 확인한 그 역사적 기록을 직접 확인취재하고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짚는 것을 시작으로 세차례에 걸쳐 특집기사를 보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기대합니다./편집자

국가보훈처가 발간한 독립운동사를 비롯해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등에서 1919년 경주에서 3.1독립만세운동은 기독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대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산군(慶山郡) 고산면(孤山面) 사월리(沙月里)에 사는 기독교 목사 김기원(金基源)과 친분이 두터웠던 도동리교회(경주제일교회의 전신. 노동교회) 박내영(朴來英) 목사와 윤기효(尹璂涍) 영수 및 박문홍(朴文泓) 영수가 그해 3월9일 경주를 방문한 김 목사로터 대구의 학생의거 소식을 듣고 경주에서 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한 것.
박내영·윤기효·박문홍 3인은 유력한 교도 5,6명과 더불어 3월 11일과 12일 밤 2회에 걸쳐 도동리(道東里) 교회당(敎會堂)에서 모임을 갖고 이곳에서 단행할 민족의거를 협의하고 김성길(金成吉)·김술룡(金述龍)을 규합후 3월12일 밤 박문홍 영수의 집에서 태극기 300개를 만들어 만들어 각부락의 신도 및 부락민에게 배부하고 3월13일 경주읍 장날을 기해 거사를 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경찰은 13일 새벽, 일부 교인들의 집을 급습했으며,박내영 거실에서 태극기 2개, 장기철(張基哲) 거실에서 태극기 30개를 발견하고 곧 박문홍 외 15명을 체포했다. 13일 최초 거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3월15일 이들의 지시를 받은 청년층 박봉록, 서봉룡, 박무훈, 최성열등의 청년지사들로 하여금 3월15일 경주 작은 장날인 오후 4시를 기해 장터에 모여든 군중과 합류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다.

이때 검거된 주동 인물 가운데 박영조(朴永照)·박문홍(朴文泓)·김학봉(金學鳳) 등은 각각 징역 10개월을, 최창수(崔昌壽)는 징역 8개월을, 손석봉(孫石鳳)·최성렬(崔聖烈[晟])은 각각 징역 6개월을, 김성길(金成吉)·박봉록(朴鳳祿)은 각각 징역 5개월을, 김성필(金晟弼)·김철(金喆)은 징역 4개월을 언도 받아 각각 대구형무소에 투옥됐다는 재판 기록등은 현재에도 남아있다.  경주에서 독립운동과 관련한 기록은 당시 법원의 재판기록등을 근거로 한 이같은 내용이 사실상 유일하게 전한다.  

천도교경주군교구 삼일독립만세 앞두고 49일간 특별기도회...기록으로 확인
   
▲ 중수하기 전 천도교경주교당.(연도 미상) <사진=정미라님 제공>

   
▲ 천도교경주교당. 1910년 이후 현재의 자리에서 세차례 중수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같은 기독교계의 독립운동 이외에도 천도교를 중심으로도 삼일만세운동이 경주에서 활발하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천도교중앙총부등에 따르면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이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할 전후처리 14개 조항이 일본신문에 보도 됐다. 그 14개 조항 중 피압박 소수민족에 대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들어 있었다.
천도교 인사들은 비록 우리나라가 거기에 해당되지 않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도 민족자결운동을 하자는데 뜻을 같이하게 된다.

천도교 3대교주 의암 손병희는 그해 12월 24일 천도교의 인일기념일(의암선생이 해월 최시형에게 동학의 도통을 전수받은 날)에 상경한 간부들을 상춘원으로 불러 "먼저 보국안민(독립)이 된 다음에야 광제창생 포덕천하도 할 수 있다" 고 강조하면서 "보국안민이 되고 못되는 것은 새해 1월 5일부터 시작하는 특별기도에 달려 있으니 정성껏 시행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국권회복을 위해 1월 5일부터 2월 22일까지 49일 특별기도를 실시하도록 전국교구에 시달했다.
전체 교인들이 술과 담배를 금한 가운데 매일 오후 9시에 일제히 촛불을 밝히고 기도식을 봉행했다.
경주는 서울 · 해주 · 의주 · 길주 · 원주 · 서산 · 전주 · 평강등과 함께 전국 아홉 곳의 대표기도처 가운데 한곳에 포함됐다.
중앙총부는 각 기도처마다 4명의 대표를 파견하여 기도식을 지도케 함으로써 3.1독립운동을 앞두고 전국의 교단조직을 결속해나갔다.

1910년부터 작성한 <천도교 경주군교구> 연혁에 따르면 경주에서 삼일만세 운동을 위한 특별기도는 중앙총부가 지시한 날보다는 3일 늦은 1월8일부터 시작됐다.
1919년 1월8일부터 2월25일까지 49일간 특별기도를 한것이다.
그 기록은 1910년부터 작성한 <천도교 경주군교구> 연혁 제29권에 상세히 나온다.

기록은 다음과 같다.

(포덕) 59년,自1월8일 至2월25일. 49일간 삼일독립선언식을 앞두고 중앙총부에서 지명 특별기도소를 본교당에서 행하다.
-진주 신용구
-경주 박인환
-언양 곽해진
-영천 이종원.

(천도교에서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득도한 1860년(4월5일)을 포덕원년으로 한다. 천도교 중앙총부는 포덕 1919년을 포덕 60년으로 표기했지만, 경주군교구에서는 59년으로 기록했다. 표기상의 차이일뿐 삼일 독립선언식을 기록한 것으로 봐서 1919년을 지칭한 것은 분명하다/편집자)

   
▲ 천도교경주군 교구 연혁 제29권에 기록된 특별기도회 관련 내용.

   
▲ 연혁 제29권 표지
전국 9개의 특별기도소 중에 경주가 포함됐으며, 중앙총부가 파견한 4명의 대표 이름이 드러난 것은 경주교구의 이 연혁이 유일하다고 한다.
천도교 관계자는 “특별기도회 참가자가 밝혀진 것은 경주교구 연혁이 처음 보는 것이며, 영남지방의 3.1운동 전개과정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라고 까지 한다.

천도교 기관지 <신인간> 심국보 편집주간은 최근호에서 “경상도는 천도교경주교구, 전라도는 전주교구, 충청도는 서산교구를 대표기도처로 정하고 삼일독립운동을 준비한 것”이라며 “경주교구가 국권회복을 위한 영남지역의 대표기도소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즉 경남도청소재지인 진주는 경남의 정치경제의 중심지로 신용구 선생은 경남 전체와 경북일대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였고, 경주, 언양, 영천 등에서 대표를 파견하여 3.1독립운동의 방향을 숙의하고 49일 기도를 통해 결속을 다졌으며, 언양의 곽해진 선생은 울산 부산 지역을 관할했고, 영천의 이종원 선생은 대구, 경북 일대의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3.1만세운동을 조직했다는 것.

이 3명이에 박인환 선생은 당시 천도교경주군교구의 대표적인 인물로 추정된다.

특별기도회 주도 박인환 선생의 손부 경주에 생존
   
▲ 특별기도회를 이끌었던 박인환 선생의 손부 이화자 여사. 박 선생과 관련한 각종 기록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당시 특별기도회를 주도했던 박인환 선생의 손주 며느리가 현재 천도교 경주교구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88세의 이화자 여사다.

1954년 천도교 경주교구 제10대 교구장을 지낸 박상택선생과 결혼하면서부터 경주교구내 사택격인 건물에서 살기 시작해 현재까지 64년간 경주교구에 머물고 있는 이 여사의 시조부(남편의 할아버지)가 바로 특별기도회에 참가했던 박인환 선생인 것.

박인환 선생은 1909년에 입교해 경주교구 순회교사, 전제원 종무사등을 역임했다.
이 여사의 시부, 즉 박인환 선생의 아들 박창근은 1914년 청년당경주당부대표, 순원포 종정, 경주군교구장, 신훈등을 역임했으며, 이 여사의 남편 박상택은 1969년, 1980년, 1990년 3회에 걸쳐 경주교구장을 역임했고, 동원포선도사등을 역임했다. 이 여사 남편 집안이 대대로 천도교 교인 집안이었던 것이다.

이 여사의 차남 박정완씨가 <경주포커스>에 보여준 족보에 따르면 경주교구의 특별기도식을 지도했던 박인환 선생은 1858년에 출생해 1935년 77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특별기도회에 참가했던때는 61세때가 된다.

2월26일 천도교경주교구 본당에서 기자와 만난 이 여사는 시조부가 천도교 중앙총부로부터 받은 각종 임명장등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서면 아화리에 살던 시조부 박인환은 당시 행상을 하던중에 수운 최제우 선생의 가르침을 알게됐고, 그 직후 동학 발상지인 용담정으로 찾아가 입교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는 기억도 들려주었다.

그렇다면 경주군교구 본당에서 거행된 특별기도식을 이끈 4명의 대표자들은 49일동안 어디에서 기거했을까.
경주교구 관계자는 현재 예배장소로 사용하는 본당이 당시에도 교인들과 함께 기도식을 진행 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 이화자 여사가 당시 특별기도회를 주도했던 4명의 대표자가 기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천도교경주군교구 연혁에 따르면 1910년 현재의 부지를 매입한 당시  경주군교구가 소유하고 있던 땅은 3필지.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의 유허지인 황오동 227번지 밭, 228번지의 지상건물, 229번지의 대지와 지상건물, 정침 1동 5간 행랑 2동 4칸 등이었다.
229번지 일부는 남 전교실과 교당, 228번지는 여 전교실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천도교 경주군 연혁에 전한다.
이를 근거로 평소에는 비어 있던 여전교실에서 이들 4명의 대표단이 숙식을 하며, 현재의 교당에서 진행된 특별기도식을 지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천도교경주군교구 소유였던 228번지 건물은 현재 개인건물 소유다.

천도교경주군교구에서 삼일 독립만세운동을 앞두고 특별기도식을 무려 49일동안이나 진행했다는 것은 영남지역을 대표할 정도로 경주지역의 천도교세가 막강했으며, 당연히 그 어느곳 보다 민족의식, 독립에 대한 의지가 컸다는 반증으로 불 수 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 태어나고 득도한 곳이 경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 엄혹한 시절에, '독립을 기원하는 특별기도식'까지 진행했다는 사실은, 기미년 3월, 경주지역 삼일 만세운동과정에서 천도교인들이 상당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다.  

99년이 지나서야, 천도교경주군교구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했다는 사실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기록은 여전히 거의 없을 만큼 부실하기 짝이 없고 경주의 독립운동에 대해 전해오는사실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고 했다.

더 많은 기록을 찾아 내고, 이를 통해 경주에서 전개된 항일독립만세운동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
그 역사의 현장을 온전하게 지키고 가꾸는 것은, 독립된 조국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경주사람들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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